겉핥기 검사+늑장 대처 `합작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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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대 규모라는 학교 급식 사고의 파문이 커지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의 집계에 따르면 16일 이후 CJ푸드시스템으로부터 단체 급식을 받은 뒤 학생들이 식중독이 의심되는 증세를 보인 학교는 25개교다. 환자 수만 1709명에 달한다. 또 문제의 업체로부터 급식을 받았던 전국 73개 급식소 89개교(8만여 명) 학생은 당분간 도시락을 준비하거나 사 먹는 것으로 점심을 해결해야 하는 고통을 받게 됐다.

전문가들은 "식중독균은 잠복기(증상이 나타날 때까지 걸리는 시간)가 짧아 큰불은 꺼졌고 잔불을 정리하는 단계"라고 추정한다. 앞으로 환자 수가 급격히 늘어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급식 재개는 어떤 균에 의한 것인지, 어느 식품이 오염됐는지가 분명히 밝혀진 뒤에나 가능하다. CJ푸드시스템이 잘못한 것으로 판명돼 영업을 할 수 없게 되면 새 급식업체와 계약할 때까지 학생들의 고통이 길어질 수 있다.

◆ 왜 발생했나 = 질병관리본부 허영주 역학조사팀장은 식중독 증세를 보인 학생들의 가검물 일부에서 '노로바이러스'가 검출됐다고 밝혔다. 이 바이러스에 의한 가장 흔한 감염 증상은 위와 장에 염증이 생기는 것이다. 감염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은 하루 이틀 안에 호전되며, 심각한 건강상의 위해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린이.노인 등 면역력이 약한 사람은 탈수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노로바이러스는 감염자의 분변이나 구토물을 통해 바이러스에 오염된 어패류.야채.지하수를 먹을 때 감염된다. 감염 후 6개월간은 면역이 생긴다.

식중독 사고는 원인균이나 원인식품이 밝혀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노로바이러스의 경우 환자의 가검물에서는 쉽게 검출되지만, 식품에서 검출하기가 까다롭다. 허 팀장은 "식품에서는 7~10일 정도 걸려야 검출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식중독의 원인을 밝히려면 환자의 가검물에서 나온 병원균과 음식에서 검출한 병원균이 일치해야 한다. 실제로 환자가 노로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은 확인됐지만 음식물에서 노로바이러스를 검출하지 못해 원인을 규명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 법원의 판결도 있다. 지난해 11월 서울고등법원은 2003년의 집단 식중독 사태와 관련된 한 위탁 급식업체가 제기한 소송에서 노로바이러스가 검출됐다는 이유로 급식 계약을 해지당한 것은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 급식업체에 식자재를 공급했던 곳도 CJ푸드시스템이었다. 당시 법원은 "국내 기술로는 음식물에서 노로바이러스를 검출해 낼 수 없다"며 "서울시 등도 노로바이러스와 식중독의 연관성을 추측하긴 했으나 정확한 감염 경로는 밝혀내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의 경우 CJ푸드시스템은 식재료로 사용된 돼지고기의 오염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러나 식품위생 전문가인 강영재(연세대 겸임교수) 박사는 돼지고기는 가열해 먹는 음식이라 원인식품이 아닐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채소.과일 등 익혀 먹지 않는 식품을 철저히 검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 늑장 대처가 피해 키운다 = 식중독과 같은 미생물에 의한 식품안전 사고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미생물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증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늑장 보고.대처'는 '호미'로 막을 사고를 '쟁기'로도 막기 어렵게 한다. 이번에도 서울시교육청은 17일 사태를 파악하고도 CJ푸드시스템에 재발 방지를 위한 시정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식의약청엔 사고가 난 지 사흘 후인 19일에야 식중독 사고 발생 사실을 처음 알렸다. 식품안전 사고는 늘 업체의 영세성 때문이며 대형 업소 제품은 문제가 없다는 식의 안전 신화도 이번 사고를 부추겼다. 이번에 문제가 된 CJ푸드시스템의 물류센터들도 3월 정부의 위생단속 대상에 포함돼 있지 않았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사진=신동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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