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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동처럼 흔들고 전기영처럼 메치면, 올림픽 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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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김민종은 도쿄올림픽 금메달에 도전한다. 김성룡 기자

김민종은 도쿄올림픽 금메달에 도전한다. 김성룡 기자

남자 유도 100㎏ 이상급(무제한급)  김민종(21·용인대)은 무서운 성장세로 주목 받는 기대주다. 19세이던 2019년 국가대표 1진을 꿰차기가 무섭게 프레올림픽을 겸해 열린 도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깜짝 동메달을 땄다. 무제한급 선수로는 작은 키(1m83㎝, 체중 135㎏)의 신인이 2m 이상 거구를 연달아 고꾸라뜨리자, 세계 유도계가 발칵 뒤집혔다. 이후 1년 반 사이에 80위권이던 세계 랭킹이 14위까지 껑충 뛰었다.

유도 무제한급 김민종 도쿄 출사표 #국내 1인자 김성민 누르고 출전 #“레전드 전기영 영상 100번 봤다” #씨름식 경기 운영 테크닉도 접목

고대하던 도쿄올림픽 출전권도 손에 넣었다. 김민종은 8일 올림픽대표 선발전(3전 2승제)에서 2007년 이후 14년째 최강자로 군림하던 김성민(34·세계 15위)을 2연승으로 제압했다. 12일 서울 서소문 중앙일보에서 만난 김민종은 “대선배를 이기고 올림픽 무대에 나서게 돼 영광이다. 이제껏 세운 목표는 다 이뤘다. 남은 건 올림픽 금메달 뿐”이라고 당치게 말했다.

김민종은 경기에서 이긴 뒤 화려한 세리머니를 즐긴다. 주로 양손 검지로 하늘을 가르키는데, '나를 주목하라'는 의미다, 김성룡 기자

김민종은 경기에서 이긴 뒤 화려한 세리머니를 즐긴다. 주로 양손 검지로 하늘을 가르키는데, '나를 주목하라'는 의미다, 김성룡 기자

김민종은 대표 선발전에 앞서 김성민과 상대 전적에서 1승4패로 열세였다. 패기만 믿고 덤비다 노련한 김성민에게 당하곤 했다. 6·7번째 맞대결은 달랐다.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올림픽이 1년 연기된 사이 기량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덕분이다. 김민종은 올해 세 차례(1·3·4월) 국제대회에 출전한 뒤 얻은 6주의 자가격리 기간을 터닝 포인트로 삼았다. 동료 선수들이 쉬는 동안 ‘유도 레전드’ 전기영(48, 용인대 교수)의 업어치기 강의와 동영상을 보고 또 봤다. 1996 애틀랜타 올림픽 금메달과 세계선수권 3연패에 빛나는 전기영은 왼쪽 자세(왼발을 앞세우는 자세)를 바탕으로 한 업어치기가 주무기다. 김민종과 똑같다. 그는 “90분짜리 영상을 100번 이상 본 것 같다. 레전드의 업어치기를 똑같이 흉내낸 뒤 내 방식대로 응용했다. 업어치기 자세를 연구하느라 자가격리가 지겨울 틈이 없었다”고 털어놨다.

김민종은 90년대 초반 씨름판을 호령한 천하장사 강호동(51)의 경기 장면도 유심히 봤다. 그는 ‘유도의 강호동’이라 불린다. 닮은 점이 많아서다. 현역 시절 강호동(1m82㎝, 130㎏)과 체격이 비슷하다. 웃을 때 작아지는 눈도, 화려한 승리 세리머니를 즐기는 모습도 판박이다.

강호동(오른쪽)과 포즈를 취한 중학생 시절 김민종. [사진 김민종]

강호동(오른쪽)과 포즈를 취한 중학생 시절 김민종. [사진 김민종]

강호동의 영상을 분석한 건 스피드와 기술을 살린 특유의 경기 운영 방식을 배우기 위해서다. 김민종은 “강호동은 영리한 움직임으로 자신보다 30~40㎏ 무거운 선수를 손쉽게 쓰러뜨렸다. 그 장면을 무한 반복해 시청하니 무제한급 ‘괴물’들을 제압할 방법이 보였다”고 설명했다. 김민종은 김성민과 맞대결에 강호동식 전략을 녹였다. 초반부터 빠르게 몰아쳐 상대를 지치게 한 뒤, 후반에 이겼다.

강호동과 실제로 만난 적도 있다. 2015년 방영한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강호동이 유도를 배웠는데, 당시 중3이던 김민종이 녹화 현장을 견학했다. 동급생보다 덩치가 큰 김민종을 발견한 강호동이 “체격도 크지만, 발 크기(300mm)가 나와 같아서 정이 간다. 이런 발은 큰 선수가 된다”고 격려했다. 김민종은 “도쿄에서 금메달 따고 강호동 아저씨를 다시 만나고 싶다. JTBC 예능 프로그램 ‘아는 형님’에 출연해 ‘천하장사 기운 받아서 정말로 큰 선수 됐다’고 자랑하면 될 것 같다”며 웃었다.

김민종은 낚시를 좋아하고, 조용한 팝송을 즐긴다. 매트 밖에선 여유롭고 차분한 것을 선호한다. 김성룡 기자

김민종은 낚시를 좋아하고, 조용한 팝송을 즐긴다. 매트 밖에선 여유롭고 차분한 것을 선호한다. 김성룡 기자

매트 밖 김민종은 평범한 20대다. 쾌활하고 끼도 넘쳐서 친구들 사이에 인기가 많다. 때때로 정육점을 운영하는 아버지를 돕고 용돈을 받기도 한다. 그는 “내가 한 번 뜨면 돼지고기 1톤 정도는 순식간에 냉동 창고로 옮길 수 있다”며 밝게 웃었다.

아버지가 운영하는 정육점에서 고깃덩이를 옮기는 김민종. 김상선 기자

아버지가 운영하는 정육점에서 고깃덩이를 옮기는 김민종. 김상선 기자

애늙은이 같은 면모도 있다. Z세대가 흔히 하는 컴퓨터 게임 대신 낚시를 즐긴다. 아이돌 댄스 음악보다 느린 템포의 팝송을 선호한다. 슴슴한 맛의 평양냉면이 ‘소울 푸드’다. 김민종은 “‘정말 2000년생 맞냐’는 말을 종종 듣는다. 유도가 워낙 빠르고 격렬한 경기라 그런지 평소엔 느리고 조용한 게 끌린다”고 말했다. 김민종은 15일 진천 선수촌에 입촌해 올림픽 대비 막판 담금질을 시작한다. 그는 “나처럼 긴장 안 하고 즐기는 풋내기가 어쩌면 올림픽에서 더 유리할 지 모른다. 제대로 사고 한 번 치겠다. 누구와 붙든 강호동처럼 흔들고, 전기영처럼 메쳐 끝내겠다”고 다짐했다.

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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