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한의사협 새 회장 현안 놓고 ´충돌 대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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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와 한의사들은 지난해부터 '총 없는 전쟁'을 치러 왔다. 한의사들이 '임산부에게도 안전한 한약' 포스터를 제작하자 의사들은 '한약 복용시 주의하십시오'라는 광고로 맞섰다. 이런 가운데 대한의사협회는 지난달 18일 장동익 협회장을 새로 선출했다. 그는 '한의사들과의 전면전'을 선포했던 강경파다. 하루 뒤인 19일 대한한의사협회는 엄종희 협회장을 재선임했다. 장.엄 회장은 5일 오후 중앙일보에서 처음 만났다. 김종혁 정책사회부 데스크와 두 시간 동안 이어진 대담에서 두 사람은 "나도 말 좀 하자"면서 상대의 발언을 중간에서 끊을 정도로 격하게 대립했다. 하지만 "외국의 대형 병원이 들어오면 양쪽 다 공멸할 수도 있다"는 지적에는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의사와 한의사의 갈등이 심각하다. 결국 밥그릇 싸움 아닌가.

▶장동익 의학협회장=한약은 부작용이 없다고 국민이 맹신하고 있다. 한의사가 그렇게 만들고 있다. 지난해 한의사협회에서 만든 감기약 포스터에 '임산부도 안전한 한약'이라는 표현이 들어 있다. 그걸 보고 의사들은 흥분했다. 양약 하나 만들려면 무수한 실험과 테스트를 거친다. 한약은 그런가. 임신부에게 약을 쓰는 게 얼마나 조심스러운데, 어떻게 이런 식으로 국민을 현혹하나.

▶엄종희 한의학협회장=임신부는 감기에 걸려도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지 못해 고통이 크다. 한방엔 임신 중에 써도 아주 좋은 감기약이 있다. 그걸 강조했을 뿐이다. 한약은 수천 년간 검증을 받아 왔다.

-하지만 그 문구는 모든 한약이 임신부에게 부작용이 없다는 착각을 줄 수 있어 보인다.

▶장=한약으로 인한 부작용 피해가 엄청나다. 국민이 속고 있다. 한약 부작용으로 찾아온 환자를 여러 명 진료해 봤다.

▶엄=국내 한약의 유통구조는 부실하다. 한의원보다 개소줏집 등을 통해 유통되는 한약이 더 많을 정도다. 한의사의 정확한 진단과 처방에 따르면 부작용은 없을 것이다.

▶장=지난해 의사 700여 명에게 설문조사를 했다. 그 중 70% 이상이 '한약 피해 환자를 진료해 봤다'고 답했다. 주로 위장 출혈과 간염 등이었다. 시중에 유통되는 한약재를 조사해 봤더니 중금속 성분이 많이 검출됐다.

▶엄=중국에서 수입되는 농산물에 그런 문제가 있고 한약재도 기본적으로 농산물이다. 하지만 한의학에서는 '수치' '법치'라 해서 독을 순화시켜 인체에 투여했을 때 가장 효율성을 내는 법을 끊임없이 연구한다. 그게 한의사의 전문 영역이다.

▶장=한의사가 자기 영역만 지키면 괜찮다. 하지만 월권하고 있다. 지난해 한의대 9곳과 일반 의대 4곳에서 배우는 내용을 비교.분석해 봤다. 한의대 과정은 의학적으로 훨씬 부실했다. 의사는 대학에서 6년, 인턴과 레지던트 5년 등 11년의 교육을 받았어도 복잡한 기계를 판독하기 어렵다. 그런데 한의사가 컴퓨터단층촬영(CT)장치 같은 현대 의료기기를 다루겠다니 말이 되나.

▶엄=의료기기는 환자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한 수단이다. 의료인이라면 누구나 쓸 수 있는 게 당연하다. 한의사니까 첨단 의료장비를 사용하지 말라는 건 받아들이기 어렵다.

▶장=간호사도 의료기기를 쓰라는 건가. 2004년 12월 서울행정법원은 '한의사도 첨단 의료기기를 쓸 수 있다'고 판결했는데 정말 뭘 몰라서 그렇다. 2심 판결도 그렇게 나오면 앞으로 젊은 한의사가 아무 의료기기나 막 쓰겠다고 나설 것이다.

▶엄=한의사는 그럼 박물관의 박제로 남으란 말이냐. 허준 시대에야 현대 의료기기가 없었으니까 시진(視診.보고 하는 진단), 맥진(脈診.맥을 짚어 하는 진단) 등 오감을 통해 진단했다. 하지만 이젠 현대 의료기기도 모두 쓸 수 있어야 한다. 한의사는 양의와 달리 이런 장비로 치료하겠다는 게 아니다. 단지 진단에 도움을 받고 치료 과정을 확인하려고 사용한다.

-CT는 아주 고가라고 하는데 그걸 들여놓은 한의원이 얼마나 되나.

▶장=여러 명의 한의사가 CT를 사용하는 걸로 안다. 10억원이 넘는 CT가 한의사에게 왜 필요한가. 또 몇 년 전 40대 중반 여성이 한의원에 가서 초음파검사를 받았더니 '췌장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았고, 완치된다는 소리에 한약을 먹었는데 소용이 없다면서 우리 병원에 왔다. 진단해 보니 이 환자의 췌장은 말짱했다.

▶엄=CT를 사용한 한의사는 단 한 명뿐이다. 그리고 일부 한의사를 일반화해 매도하지 마라. 그럼 악덕 의사는 없는가.

-의사와 한의사의 입장이 정반대인 적도 있다. 지난해엔 의사가 IMS(근육에 침 같은 바늘을 찔러넣는 자극치료)를 사용하는 걸 한의사가 반대하지 않았나.

▶엄=IMS는 필리핀 의사가 침술의 원리를 이용해 만든 것이다. 의사가 그걸 사용하는 건 전통의학의 치료 영역 침범이다. CT나 초음파 기기는 진단과 치료 과정 확인에 사용되는 도구일 뿐이다. 그러나 IMS는 치료행위다.

-국립대에 한의대를 만들라고 요구하고 있는데 지금도 한의대나 의대는 배출 인력이 너무 많은 것 아닌가.

▶엄=한의학을 발전시켜 국제경쟁력을 갖추려면 국립대에 한의대를 만들어야 한다. 한의학 육성 5개년 계획이 올해 시작됐지만 정부가 더 투자해야 한다.

▶장=한의학계가 스스로 자정 노력도 없는데 정부가 한의학 육성에 1조원 가까이 쓰겠다는 건 말도 안 된다. 이미 시민단체에서 감사원에 감사청구도 했다.

-과거 국내 은행들이 제살깎기식 경쟁을 했지만 외국 은행이 들어오면서 속속 망했다. 의료계도 내부 싸움만 해선 안 될 것 같은데.

▶장=우리나라 의료시장은 인큐베이터 속의 아이다. 원인은 의료보험 수가(의료행위에 지불되는 가격)가 원가에도 못 미쳐서다. 대학병원은 입원실이 꽉 찼는데도 적자다. 의사의 배를 불리겠다는 게 아니라 경쟁력 강화를 위해 수가 인상이 필요하다.

▶엄=외국계 대형 병원이 들어오면 한의사도 피해를 본다. 그래서 지난해에 '범의료계 상생위원회'를 제안했는데 장 회장이 반대했다.

▶장=한방을 무조건 부정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내 주머니에서 10만원을 뺏어간 상대방과 어떻게 상생이 가능하겠나. CT 관련 2심 판결 등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 문제만 해결되면 공조하겠다.

정리=김정수 기자

◆ 대한의사협회는

▶1908년 설립된 한국의사연구회가 모태▶총회원 수 약 7만5000명

◆ 장동익 회장은

▶48년생▶연세대 의대 졸업(내과 전문의)▶3월 제34대 의협 회장으로 선출

◆ 대한한의사협회는

▶1952년 설립▶현재 총회원 약 1만6200명

◆ 엄종희 회장은

▶54년생▶원광대 한의대 졸업▶3월 제37대 회장에 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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