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불면증·우울증, 약이 지겹나요

중앙일보

입력

21일 오전 11시 서울 광진구 자양동 나루아트센터 소공연장. 슈만의 '트로이메라이'(꿈)를 연주하는 첼로 선율이 부드럽고 따뜻하게 실려왔다. 객석에는 광진구 주민뿐만 아니라 멀리 인천.성남에서 달려온 주부 40여 명이 앉아 있었다. 이달부터 매월 둘째, 넷째 화요일 오전에 열리는 일반인을 위한 음악치료 공개 강좌다. 연주에 앞서 부천에 사는 한 주부가 보내온 e-메일 사연이 소개됐다.

"결혼 후 임신해 지내는 동안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든 일이 많았어요. 그럴 때마다 '트로이메라이'를 즐겨 들었습니다. 솔직히 클래식도 잘 모르고 첼로가 어떤 악기인지도 몰랐지만, 그냥 이 음악이 좋았고 적잖은 위안을 받았어요. '트로이메라이'는 제 인생을 바꿔 놓은 음악입니다."

나루아트센터(극장장 박평준)가 12월말까지 계속하는 연중 기획 '음악이 가르쳐 준 비밀'은 수도권 공연장마다 주부층을 겨냥해 평일 오전 11시에 마련하고 있는 음악회와는 다르다. 음악만 들려주는 게 아니라 일상 생활 속에서 음악을 쉽게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음악치료 하면 장애아동이나 정신 질환자를 위해 병원 등 특수기관에서 실시하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처음엔 '일반인을 위한 음악치료'라는 문구를 보고 의아해 하는 사람도 있었다. 7일 첫날 프로그램에는 20여 명이 참석했지만 입소문 덕분에 두 배로 늘어났다. 인터넷 검색 엔진에 '스트레스'를 입력했다가 이 프로그램을 찾은 주부도 있었다.

"가정에서 스트레스와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주부들이 많아요. 음악을 통해 숨겨진 자아를 발견하고, 현재의 삶을 보다 풍요롭고 즐겁게 영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이 프로그램의 목적입니다."

음악치료사 한정아씨는 이화여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같은 대학원 음악치료학과를 졸업했다. 2002년부터 태릉성심병원, 이화여대 동대문병원, 신당 노인주간보호센터 등에서 음악치료를 해왔다. "웰빙과 스트레스 해소에 음악만큼 좋은 방법도 없어요. 자녀들도 어렸을 때부터 좋은 음악 많이 들려주고 연주하도록 하는 게 중요합니다."

불면증 해소와 심신 안정을 위한 프로그램이 있는가 하면 정서가 불안한 아이들에게 음악적 감수성을 높여주는 프로그램 '오디(Audie)'를 소개하기도 한다. 음악을 바쁜 일상에 쉼표 같은 재충전과 휴식의 시간으로 활용하는 노하우도 알려준다.

사실 주부만큼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경우도 없다. 끝이 없는 집안일, 엄마만 계속 찾는 아이들, 남편과 시댁 식구들 사이에서 엄마, 아내, 며느리로 바삐 살아가다 보면 자기만의 소중한 시간도 없이 쫓기기 쉽다. 그럴수록 음악에서 편안한 휴식과 재충전의 시간을 찾아야 한다.

한씨는 음악치료에 대한 일반인들의 잘못된 선입견들도 지적했다. 음악감상이 음악치료의 전부가 아니라고도 했다. 신경쇠약에는 헨델의 '수상음악', 소화가 안될 때는 드보르자크의 '현을 위한 세레나데', 슬플 때는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전주곡', 우울할 때는 슈베르트의 현악 5중주 '죽음과 소녀', 초조하고 불안할 때는 포레의'레퀴엠'을 들으라는 식의 일대일 처방은 음반회사의 상술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특정 작품에 집착하기보다는 원리를 터득해야 한다는 것이 한씨의 주장이다. "우울하고 슬플 때 밝고 경쾌한 음악을 듣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도 있지요. '동질성의 원리'에 따라 오히려 슬픈 음악을 듣는 게 카타르시스에 도움이 됩니다. 잠이 오지 않을 때는 느리고 부드러운 현악기 위주의 음악이 좋지요."

'음악이 가르쳐준 비밀'의 4회(2개월) 패키지 프로그램 가격은 1만5000원(방학 기간은 1만원). 연간(20회) 프로그램은 5만5000원. 4월 말까지는 누구나 무료로 참여할 수 있다. 02-2049-4700.

음악 치료에 대한 5가지 오해

(1) 특정 질병을 낫게 하는 음악이 따로 있다.

(2) 음악치료는 클래식 감상이 최고다.

(3) 우울하고 슬플 때는 밝고 경쾌한 음악이 좋다.

(4) 음악 치료를 받으려면 충분한 음악적 소양이 필요하다.

(5) 음악 치료는 환자가 아닌 정상인과는 무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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