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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곳곳 "독재 타도" 전단…'80년 봄'으로 돌아간 부평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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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인천시 부평구 부평역 부근 한 가게에 미얀마 군부를 규탄하는 전단이 붙어있다. 심석용 기자

지난달 28일 인천시 부평구 부평역 부근 한 가게에 미얀마 군부를 규탄하는 전단이 붙어있다. 심석용 기자

수도권 지하철 1호선 인천 부평역 인근엔 미얀마어 간판을 단 점포가 모인 골목이 있다. 부평 미얀마 커뮤니티다. 최근엔 이 골목의 건물 유리창과 출입문은 새로운 전단으로 도배됐다. 미얀마와 한국어로 각각 쓰인 전단엔 “도와달라”는 취지의 글이 적혀 있다. 골목의 한 음식점 주인 민민땡(43)씨는 “미얀마 군부를 규탄하고 민주화 운동을 지원하기 위한 성금을 모금하는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미얀마인 ‘만남의 장’ 된 부평

부평에는 429명의 미얀마인이 산다. 미얀마 민주화운동 전단이 흩날리는 골목에는 주말이면 부평 외부에서도 미얀마인들이 모여든다. 교통이 편리하고 부동산 가격도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남동공단과도 멀지 않은 장점이 있다. 2000년대엔 불교사원도 5곳이 생기면서 외국인이 살기 좋은 곳으로 거듭났다.

지난달 25일 민주 진영의 국민통합정부(NUG) 출범을 기념하는 국내 행사가 부평구 민주노총 인천본부 지하대강당에서 열렸다. 사진 미얀마군부독재타도위원회 제공

지난달 25일 민주 진영의 국민통합정부(NUG) 출범을 기념하는 국내 행사가 부평구 민주노총 인천본부 지하대강당에서 열렸다. 사진 미얀마군부독재타도위원회 제공

부평에 미얀마 커뮤니티가 본격적으로 만들어진 건 법무부가 재정착 난민 수용사업을 시작하면서다. 해외 난민 캠프에서 제3국으로 영구 이주를 원하는 난민을 유엔난민기구(UNHCR) 추천을 받아 심사해 수용하는 사업이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지원센터에서 최대 6개월간 교육을 수료하면 1년간 주택 임차료를 지원받는다.

이 사업에 힘입어 태국 난민 캠프 등에 머물던 미얀마인들이 지난 2015년부터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2015년 22명(4가구), 2016년 34명(7가구), 2017년 30명(5가구), 2018년 26명(8가구)가 한국에 들어왔는데 모두 부평에 터를 잡았다. 1년 뒤에도 대부분 이곳에 산다.

부평 중심으로 ‘독재 타도’ 한 목소리

24일 오후 서울 용산구 주한미얀마대사관 앞에서 한국외대·한국예술종합학교 총학생회 관계자들이 '미얀마 군부 독재 청산을 위해 투쟁하는 시민들과 연대하고, 미얀마 민주주의 쟁취를 지지하는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4일 오후 서울 용산구 주한미얀마대사관 앞에서 한국외대·한국예술종합학교 총학생회 관계자들이 '미얀마 군부 독재 청산을 위해 투쟁하는 시민들과 연대하고, 미얀마 민주주의 쟁취를 지지하는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미얀마 커뮤니티의 화두는 고국의 민주화다. 미얀마에선 지난 2월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연일 민주화를 요구한다. 군·경이 실탄을 발포하고 체포·구금으로 대응하면서 희생자가 늘고 있다. 몸은 떠났지만, 마음은 고국을 향해있는 부평 미얀마인들도 고국을 위해 나섰다. 지난 2월 미얀마 군부독재타도위원회를 만들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고국의 소식을 듣고 공유하는 한편 어려움을 겪는 미얀마 시민을 위해 전국적으로 모금한 3억5000만원을 전달하기도 했다. 윙라이(49) 미얀마군부독재타도위원회 공동대표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순 없지만, 민주화운동에 힘쓰는 고국 동지들에 돈을 보내고 있다”며 “과거 미얀마에서 민주화 운동을 해왔던 분들이 많아서 다들 자기 일인 듯 나서서 돕고 있다”고 말했다.

군부독재타도위는 지난달 25일 부평구 한 건물에서 9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미얀마 민주 진영의 국민통합정부(NUG) 출범을 기념하는 행사를 열었다. NUG도 부통령 명의 서한을 통해 “대한민국 국민은 군사정부의 어려움을 겪은 경험이 있고, (군부가 물러날 때까지) 저항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가졌다”며 “우리도 그 용기와 지혜를 전달받으며 정의가 반드시 이길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뜻을 전했다.

위원회 공동대표 중 소모뚜(46)씨 등 2명은 미얀마 군부로부터 지명 수배를 받은 상태다. 미얀마 현지 언론에 따르면 군부는 지난달 2일 소모뚜씨 등 미얀마 군부독재 타도위원회 관계자 6명이 이재명 경기도 지사와 간담회를 한 것을 문제 삼은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개의치 않고 고국의 민주화를 위해 힘쓰겠다는 게 이들의 뜻이다.

“한국이 민주화를 이뤄냈듯 미얀마도 꼭 민주화를 이뤘으면 좋겠어요. 그때까지 관심을 놓지 말아 주세요.” 생업을 제쳐놓고 전국을 오가며 미얀마 민주화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부평 미얀마인들의 간절한 바람이다.

심석용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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