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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5㎞구간 횡단보도 하나 없는데" 불만도 커지는 '시속 50㎞'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여기가 시속 50㎞면 너무 한 거야."
25일 오후 1시 30분쯤 기자를 태우고 서울 한강대교를 건너던 택시기사 변모(67·남)씨가 말했다. 시속 50~55㎞로 달리던 택시를 앞서가던 차들은 단속 카메라가 보였을 때만 잠시 속도를 낮춘 뒤 다시 속도를 높였다.

25일 오후 1시 15분쯤 서울 용산구의 한 횡단보도. 편광현 기자

25일 오후 1시 15분쯤 서울 용산구의 한 횡단보도. 편광현 기자

이어진 서울 영등포구 노들로에서도 대부분 차가 시속 55km 이상으로 달렸다. 3분 만에 기자가 탄 택시의 좌측 한 차로에서만 차량 15대가 앞질러 갔다. 택시가 움직인 노들로 약 5㎞ 구간에 횡단보도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변씨는 "속도 제한이 시속 50㎞로 내려왔지만 이런 도로에서는 지키는 차가 거의 없다"며 "보행자도 없는 도로까지 왜 속도를 낮추라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의문을 표했다.

"일부 구간 빼달라"

전국 도심 일반도로의 차량 속도를 최대 시속 50㎞로 제한한 '안전속도 5030' 정책이 시행된 지 일주일을 넘기면서 일부 시민들의 불만이 쏟아졌다. 서울의 17년 차 택시기사는 "교통안전을 위한다는 취지에는 크게 공감한다"면서도 "보행자 수가 적거나 아예 없는 도로까지 24시간 일괄 적용하는 것은 유연하지 못한 처사"라고 말했다. 이 택시기사는 노들로 외에도 내곡교차로(IC) 인근 헌릉로와 사당역 인근 남부순환로 등이 5030 예외 도로가 되어야 한다고 꼽았다. 모두 보행자 수가 적고 평소 교통량이 많은 곳이다.

정책 시행 이틀 뒤인 지난 19일에는 '안전속도 5030 폐지 요청' 청와대 청원도 등장했다. 청원자는 "도로 상황을 봐 가면서 5030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며 "차량흐름을 현저히 저해할 것으로 예상되는 법규를 폐지 요청한다"고 적었다. 이 청원에 동의했다는 운전자 유모(51·남)씨는 "보행자 사고에는 보행자의 부주의도 큰 부분"이라며 "교통 체증에 시달리는 운전자들에게만 속도를 줄이라고 하니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25일 오후 3시 기준 이 청원에는 7900명이 동의했다.

25일 오후 1시 30분쯤 서울 노들로. 기자가 탄 '시속 50km 택시'를 앞지른 차량이 점점 멀어지고 있다. 편광현 기자

25일 오후 1시 30분쯤 서울 노들로. 기자가 탄 '시속 50km 택시'를 앞지른 차량이 점점 멀어지고 있다. 편광현 기자

한편 5030 정책 시행을 반기는 목소리도 있었다. 노들로를 이용해 출퇴근한다는 정모(29·남)씨는 "일주일 동안 불편했지만, 오히려 안정적인 느낌이었다"며 "급정거를 해야 할 때 주행 속도가 낮으면 확실히 사고가 줄어들지 않겠냐"고 말했다. 서울 은평구에 거주하는 박모(54·여)씨는 "나도 운전자지만 차에서 내리면 보행자이기도 하다"며 "아이나 어르신뿐 아니라 모든 보행자의 안전을 위해 도심 지역 차량 속도를 전반적으로 낮추는 것에는 동의한다"고 했다.

경찰 "노들로 사망자 중상자 줄었다"

일주일간 받은 지적에 대해 경찰은 "노들로 등 지적된 도로의 속도제한 정책에 문제가 없다"는 답변을 내놨다. 25일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노들로는 기존 자동차도로여서 보행자가 없다는 인식이 남아있다"며 "하지만 지금은 버스 정류장도 있고 한강으로 가는 길도 만들고 있어 보행자 보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해 1분기 노들로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사망자가 1명, 중상자가 4명이었다. 올해 같은 기간엔 사망자 및 중상자가 없다. 다만 사고 건수(20건)와 경상자 수(26명)는 변화가 없었다고 한다.

25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의 한 어린이보호구역. 편광현 기자

25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의 한 어린이보호구역. 편광현 기자

안전속도 5030 정책이 17일부터 시행된 만큼, 과속 단속된 운전자는 26일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고지서를 받게 될 전망이다. 경찰 관계자는 "변경된 제한속도 기준에 따라 과태료 부과가 시작됐고, 고지서 발송까지는 통상 5일이 걸린다"며 "관련 통계는 한 달 후에 산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보행자 중심의 교통문화로 가는 과정"이라며 "운전자분들이 불편하시더라도 적응될 때까지만 기다려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편광현 기자 pyun.gwa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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