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도 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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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 "없다" "봤다" "못 봤다" "나는 모르는 일이다"… 지난해부터 전국을 뜨겁게 달궜던 황우석 교수 때문에 결국 '거짓말'로 매듭지어졌다. 거짓말은 때론 개인과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주는 병적 현상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실은 일상에서 늘 부딪히는 보통사람들의 표현 기법이기도 하다. 말을 하면서부터 배우는 거짓말, 어떻게 해석하고, 어떤 것이 병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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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은 정신건강이 무너진 상태=거짓말은 책임.처벌을 피하고, 명예를 지키기 위한 방어 수단으로 활용된다. 이를 본능과 자아(自我).초(超)자아로 설명하기도 한다. 충동과 욕구를 지향하는 본능, 이를 견제하고 감독하는 초자아, 현실에 대한 분별력을 담당하는 자아가 균형을 상실했을 때 거짓말이 나온다는 것.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이동수 교수는 "거짓말은 원하는 것을 갖고 싶은 본능이 강해 도덕.양심.윤리를 지키려는 초자아가 무너지면서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성격에 문제가 있어도 거짓말을 한다. 자기애적인 사람은 '나는 남들과 달리 특별한 능력을 타고났다'고 생각하며 관심을 끄는 수단으로 거짓말을 한다. 또 연극적 성향의 히스테리 성격, 하루에도 몇 번씩 변덕을 부리는 경계성 인격장애인들도 거짓말을 한다.

무의식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어떤 사람과의 약속을 어겼다고 하자. 그의 내면에는 만나기 싫은 마음이 들어 있다. 이때 무의식이 발동해 '잊어버려 가지 못했다'고 자신을 합리화한다. 이동수 교수는 "의식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생각, 욕망이나 충동을 무의식적으로 부정하면서 고통에서 벗어난다"고 밝힌다.

#거짓말도 치료해야 하는 병=거짓말은 말을 배우면서 시작된다. 세상에 대한 궁금증과 상상력을 가진 아이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거짓말을 택한다. 이때 아이는 부모의 반응을 관찰하며 거짓말에 대한 가치관을 형성한다. 아이의 거짓말을 그냥 웃고 넘겨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거짓말은 성장 후 훔치기, 무단 결석, 공격적 성향 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거짓말을 상습적으로 하는 아이는 정상 아이에 비해 반사회적 인격장애, 경계성 인격장애와 같은 정신병리 발생 확률이 높다. 죄의식이 없어 거짓말보다 더한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이다. 거짓말쟁이는 대인관계에도 문제가 많다. 또 거짓말에 성공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실패하면 우울해지므로 감정의 기복도 심하다.

거짓말은 어린 시절 조기 발견.치료가 필요하다. 우선 아이가 거짓말을 하면 혼을 내기 전 가정 상황을 되돌아 봐야 한다. '손님이 찾아오면 아빠 없다고 해라'하는 식으로 아이의 가치관에 혼란을 주었는지 살피라는 것. 부모의 따뜻함이나 진실성이 부족한지, 아이를 감독하지 않고 방치하진 않았는지, 아이를 불신.거부한 적은 없는지도 생각해야 한다. 다음으론 거짓말이 나쁜 짓임을 충분히 반복 설명해 올바른 가치관을 갖도록 도와준다.

가정에서 치료가 어려우면 정신과를 찾는다. 의사와 매주 1~2회씩, 1년 이상 장기간 면담을 통해 성격상 문제점과 원인을 찾아 고쳐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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