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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김창완 '부어라 마셔라' 30여 년 해보니 …

중앙일보

입력

12월. 송년회 철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약속이 잡히고 그때마다 2차는 필수, 3차는 선택인 '술 쓰나미'가 밀어닥칠 게 분명하다. 누구나 원하지 않지만 어느 누구도 피해가기 어려운 이달의 지뢰밭, 과음.폭주…. 이 '술의 계절'을 맞아 중앙일보가 세계 최대 주류생산업체 디아지오 코리아와 함께 '쿨 드링커 캠페인'을 벌인다. 무조건 술한테 책임을 돌리지 말고 절제할 줄 아는 술 소비자가 되자는 얘기다. 그 첫 발로 Week&이 가수 김창완씨를 만나 그의 '술 철학'을 들어봤다. 한때는 '폭주가'였지만, 이젠 '애주가'로 변신했다는 그다.

“아직 술과 나와 관계가 명확하지 않은데….”

술 얘기하러 왔다고 했더니, 의외로 소심한 대답부터 한다. 김창완(51)씨. 1970년대 말 밴드 ‘산울림’으로 등장, 한국 펑크록 역사를 새롭게 써내려 간 음악인. 그리고 어느 날 변신, 사람 좋은 동네 아저씨 역할은 도맡아 하고 있는 배우. 이런 그는 문화계에서 소문난 ‘애주가’다. 그러니 술에 대한 생각이 아직 정립되지 않았다고 말하는 건 지나친 겸손. 아니나 다를까 “한잔 하면서 하자”라며 포도주를 골라온 그는 술에 대한 지론을 술술 풀어내기 시작했다.

창완씨가 술을 처음 마신 건 고등학교 때란다. 그렇다고 놀랄 일은 아니다. 그저 호기심에 친구들과 막걸리를 홀짝거려 본 수준이었으니. ‘본격적으로’ 술을 마시기 시작한 것은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였다. 술에 대해서라면 청탁(淸濁)을 불문하던 시절. 소주고 막걸리고 맥주고 거침없이 마셨다.

77년에 두 아우와 함께 ‘산울림’으로 데뷔한 이후에는 술 자리가 더 잦아졌다. “데뷔 이듬해부터 라디오 프로그램을 맡아 진행했었지요. 그런데 80년대 초반엔 ‘거품경제’ 때문이었는지, 직장인들 사이에서 낮술이 유행이었거든요. 제가 맡은 프로그램은 마침 이른 아침 아니면 심야였고요. 그러니 술 마시기 얼마나 좋았겠어요. 프로그램 프로듀서랑 어울려서 많이 마셨죠. 노란 햇살 받으며 마시던 노란 맥주. 안주는 노란 노가리….(웃음)”

적당하면 약이지만, 과하면 독이 되는 게 술이다. 창완씨에게도 그랬다. 취해 몸을 추스르지 못하는 날이 늘어났다. 딱 한 번이긴 하지만, 방송에서도 실수를 했다. “공개방송 녹음이 있는 날이었는데, 술이 좀 과했나 봐요. 살짝 취한 상태에서 녹음을 마쳤는데, 나중에 깨고 다시 들어보니까 혀가 꼬였더라고요. 초대 가수며 방청객까지 다시 불러올 수는 없는 일이고, 저 혼자 하는 대사들만 다시 녹음해서 편집을 했죠. 어찌나 난감했는지.”

창완씨는 이날 이후 ‘방송 사고’ 같은 대형 실수는 결코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과격한(!) 음주 습관을 버린 것은 결코 아니었다. 맥주에서 위스키를 거쳐 고량주로, 거기서 포도주를 지나 소주로…. 한 가지 술에 ‘필(feel)이 꽂히면’ 2∼3년은 집중적으로 그 술을 마셨다. 한번 술 자리에 앉으면 잔을 세는 법이 없었고, 일주일에 한두 번은 새벽녘 사람들을 자기 집으로까지 데리고 가야 직성이 풀렸다. “집사람이 선천적으로 ‘바가지’라는 걸 몰라요. 그걸 믿고 사람들을 끌고 다녔죠.”

그런데 마실 만큼 마셔 본 30년 경력의 애주가 창완씨가 요즘은 자주 이런 말을 한다. “술의 유일한 해독제는 후회다.” 드디어 술이 싫어진 것일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창완씨는 아직도 일주일에 한 번쯤은 술을 마신다. ‘반주 한두 잔’은 넘는 술이다. 그렇다면 그가 하는 말은? “술을 마시면 후회할 일을 하게 마련이죠. 그런데 살아보니까 인생이란 것 자체가 다 후회더라고요. 뭘 해도 후회는 조금씩 할 수밖에 없는 게 인생이더라고요.(웃음)”

"엄청 부어댔죠 도망치고 싶을 만큼
술 해독제는 후회뿐이란 걸 뒤늦게 알았어요
주량 반으로 줄여 보세요
즐거운 건 똑같아요"

자칫 술꾼의 궤변 같은 얘기. 이 장난스러운 얘기를 창완씨는 이렇게 푼다. "술 때문에 몸과 마음이 괴롭고, 그래서 술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마음. 다른 술꾼들처럼 저도 그랬어요. 그러면서도 조절이 안 되니까 계속 폭음을 했죠. 술 마시면 기분이 고양되는 게 좋았거든요. 그런데 술의 해독제가 후회뿐이란 걸 인식하면서 술에 대한 태도가 바뀌더라고요. 전보다 덜 마시게 됐고, 취해도 기분이 좋다고 설치는 게 아니라, 기분 좋아하는 나를 보면서 흐뭇해할 줄도 알게 됐죠. 굳이 말하자면 술에 대해 두어 꺼풀 벗었다고 할까. 그래서 역설적으로 요즘은 '이젠 술이 참 좋다'고 생각해요."

창완씨는 운동을 열심히 한다. 특히 좋아하는 건 자전거 타기. 최근에도 아들과 함께 자전거로 '땅끝 마을'에 다녀왔다. 꼭 술을 위해서만은 아니라지만, 이렇게 체력을 꾸준히 다져야 좋아하는 술도 꾸준히 먹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 그러면서 그는 음주량도 줄여 나가고 있다. 술을 마시는 속도도 무척 늦춰, 이제 포도주 한 병 놓고도 1~2시간이 거뜬하다. 게다가 언제든 필요하다 싶을 땐 절주도 한다. 연말 산울림 공연을 앞둔 요즘도 그런다.

이쯤은 돼야 술을 '즐긴다'고 할 수 있을 터. '주선(酒仙)' 조지훈 선생이 꼽았다는 '주도(酒道) 18단' 중에서도 15단 '석주(惜酒.술을 아끼는 사람)' 정도에는 이른 것 같다. 잘 마시지만, 취하는 것을 민망하게 여기는 사람은 고작 3단(민주.憫酒). 이런 이들은 취했었다는 게 부끄러워, 그 기억을 잊으려 또 다시 술의 힘을 빌린다. 악순환. 이런 단계를 온몸으로 부대끼며, 혼자 거쳐온 창완씨. 그래서 그는 '후학'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술, 참~좋죠. 개인적으로는 음악과 방송, 그리고 연기라는 중요한 요소들 사이사이에 파고들어 삶을 기름지게 해줬거든요. 마치 고급 쇠고기의 '마블링'처럼. 그래서 술자리가 많은 우리 문화도 좋아요. 단, 전반적으로 술 먹는 양은 줄일 필요가 있어요. 사실 '내 주량은 소주 3병' '난 위스키 1병'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믿지 않아요, 저는. 그건 그냥 억지로 쏟아 붓는 양이니까요. 제 경험상 술이 주는 '좋은 효과'만 누리려면 누구든 소주 반 병 정도면 충분해요. 그러니 지금 자기 주량을 믿고 폭주하는 분들, 그 주량을 딱 반으로 줄여 보세요. 그래도 기분은 똑같이 즐겁고, 다음날 아침도 상쾌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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