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익은 김치엔 요구르트 4배의 유산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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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구르트만 유산균의 보고(寶庫)가 아니다. 우리가 매일 먹는 김치에도 유산균이 예상 외로 많이 들어 있다.

풀무원 김치연구소 박채린 실장은 "잘 익은 김치엔 유산균이 요구르트보다 최고 4배까지(같은 무게당) 더 들어 있다"고 말했다. 잘 숙성된 김치 1g엔 유산균이 1억 마리쯤 함유돼 있다.

과거엔 김치의 유산균은'약골'이라고 여겼다. 대부분 살아서 장까지 도달하지 못한다고 본 것이다. 특히 위에서 위산에 노출되면 살아남지 못할 것으로 봤다. 그러나 부산대 김치연구소 박건영 소장은 "김치를 하루 300g쯤 먹으면 대장에 유산균이 100배가량 증가한다(김치를 안 먹은 사람 대비)"며 "이는 김치의 유산균이 장에 무사히 안착했다는 증거"라고 풀이했다.

유산균은 당을 대사하는 과정에서 유산(젖산)을 50% 이상 만들어내는 미생물 중 인간에게 유용한 세균을 가리킨다. 요구르트가 불가리아.러시아인의 장수 비결(1908년 프랑스 파스퇴르연구소의 메치니코프 박사 주장)이라면 우리 토착 유산균은 김치.청국장.된장에 들어 있다.

김치의 유산균은 주재료(배추.무)와 부재료(고춧가루.마늘 등)에서 자란 것이다. 덜 익은 김치.신 김치는 물론 묵은지에도 유산균은 풍부하게 들어 있다. 다만 김치가 숙성하는 과정에서 유산균의 주류가 교체된다.

목포대 식품공학과 김인철 교수는 "김치가 시어지기 전엔 류코노스톡이란 유산균이, 시어진 뒤엔 락토 바실러스(요구르트 등 유제품에 든 유산균)가 주종을 이룬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김치에서 군내가 나기 시작한다면 유산균보다는 잡균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이런 김치는 김치찌개 등 다른 용도로 돌리는 것이 좋다.

김치 유산균의 가장 중요한 효과는 정장 작용이다. 장을 깨끗이 하는 것이다. 유산균이 장내에 풍부하게 있으면 유해균이나 잡균이 죽거나 힘을 쓰지 못한다. 이는 요구르트의 유산균도 마찬가지다. 김치 유산균은 또 면역력을 높여준다. 이는 동물실험을 통해 이미 증명됐다.

사스(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조류 독감 등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를 죽이는데도 유효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높은 항균력(세균을 죽이는 힘).항바이러스력(바이러스를 죽이는 힘) 덕분이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조류독감의 예방.치료를 위해 닭.오리 등 가금류의 사료에 김치 유산균(류코노스톡)을 첨가하려 시도하는 것은 유산균의 항바이러스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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