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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관 기자의 아하! 그렇군요] 그렇게 마셔도 멀쩡하네

중앙일보

입력

부서 회식 때마다 술 마시는 일이 괴로운 김모(31) 대리. 남들은 벌컥벌컥 잘도 마시는 폭탄주가 그에게는 사약만큼이나 힘겹기만 하다.

오늘도 식사가 나오기 전 으레 술잔이 돈다. 소주와 맥주를 섞은 '소폭'이 김대리의 목을 타고 위로 쏟아진다. 빈 위 속에서 빠르게 흡수된 알코올이 문맥이라는 혈관을 타고 간에 도착하자 ADH(알코올탈수소) 효소가 기다렸다는 듯이 분해를 시작한다. 분해 산물인 아세트알데히드는 얼굴을 달아오르게 하고, 맥박을 빠르게 뛰게 하며, 두통과 구토라는 알코올 부작용을 일으키는 원인 물질. 따라서 간에는 ALDH2라는 효소가 항시 대기하다 아세트알데히드를 인체에 무해한 물과 이산화탄소로 바꿔 몸에서 배출시킨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김 대리는 이 ALDH2라는 효소가 충분하지 않다(인구의 30~40%에 해당). 그의 몸안에 분해되지 않은 아세트알데히드가 쌓이면서 얼굴이 불콰해진다.

이 정도 알코올로도 그의 뇌에 있는 대뇌신피질은 살짝 마비된다. 이성을 관장하는 부위가 기능을 하지 않으니 평소보다 말이 많아지고 감정이 풍부해지며, 용감해진다. 상사 앞에서 농담도 하고, 푸념도 늘어놓을 정도가 된다.

그는 다시 폭탄주 세례를 받는다. 아직 간에서 아세트알데히드가 분해되기 전이다. ALDH2라는 효소가 많은 동료는 얼굴색 하나 변하질 않지만 이 효소가 없는 그의 혈중에는 아세트알데히드 농도가 급속히 늘어간다.

차츰 대뇌변연계와 소뇌까지 마비되기 시작한다. 대뇌변연계에는 해마라는 조직이 있다. 해마는 정보를 입력하는 창구. 또 소뇌는 몸의 작은 동작을 조정하는 제어장치다. '술 먹고 필름이 끊겼다'는 것은 해마가 기능을 하지 못했다는 뜻, 그리고 비틀거리며 몸을 못 가누는 것은 소뇌가 마비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이미 만취 상태다.

이런 그에게 술을 더 강요하면 어떻게 될까. 알코올 농도가 높아지면서 뇌간이 위험해진다. 뇌간은 호흡.소화.심장박동 등 생명을 유지하는 사령탑. 다른 조직이 건강해도 뇌간이 망가지면 살기 힘들다. 이른바 뇌사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대학 신입생 환영회에선 과음으로 학생이 사망하는 사건이 종종 발생한다. 개인마다 주량이 다르다는 사실을 모른 채 술을 강요해 뇌간까지 손상시킨 결과다. 주량이란 바로 ALDH2라는 효소의 많고 적음을 의미한다. 인체의 생리를 알면 술을 강요하는 행위가 얼마나 무모한 짓인지를 알 것이다.

그렇다면 기분 좋게 취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주량에 맞게 천천히 술을 마시는 것이다. 가장 위험한 음주 행태가'원 샷'이다. 혈중 알코올 농도를 급속도로 높여 뇌를 마비시키기 때문이다.

간이 알코올을 분해하는 속도는 대략 1시간에 10㎖ 정도다. 맥주 반 병, 위스키 20~30㎖, 소주 40~50㎖가 이 정도에 해당한다. 간이 알코올을 분해하는 속도를 약간 넘는 정도, 즉 대뇌피질이 살짝 마비된 상태를 유지하라는 것이다.

술을 마실 때는 가능하면 약을 복용하지 않는 것도 지켜야 할 수칙이다. 간에는 미크로좀 에탄올 산화계(MEOS)라는 또 다른 효소가 있다. 몸에 화학물질이 들어오면 즉시 분해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알코올이 들어오면 이 효소가 알코올을 분해하는 데 쓰여 남은 화학물질이 몸에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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