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균 기자의 약선] 유해산소 킬러, 살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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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대추.복숭아.자두와 더불어 귀한 5과(五果)로 취급되는 살구가 요즘 제철을 맞았다.

선조들은 몸이 힘들면 봄에 도라지차, 여름에 살구.복숭아, 가을에 은행(볶은 것), 겨울에 귤껍질차를 마셨다.

살구가 건강에 좋은 것은 노란색 식품에 많은 베타 카로틴(말린 살구 100g당 5㎎)과 붉은색 과일에 풍부한 라이코펜이 모두 들어 있어서다(연세대 식품영양학과 이종호 교수). 둘 다 노화와 만병의 근원인 유해산소를 없애주는 항산화 물질이다.

이중 베타 카로틴은 비타민C와 함께 폐암을 예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국립암연구소(NCI)는 살구가 폐암 외에 위암.방광암.식도암.인후암의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라이코펜은 토마토의 '묘약'으로 유명한 식물의 생리활성물질이다. 즐겨 먹으면 암 예방, 혈관 청소에 유익하다. 네덜란드 에라스무스의대 연구팀은 혈중 라이코펜 농도가 높을수록 혈류를 방해하는 플라그가 적다는 조사결과로 이를 입증했다. 라이코펜은 토마토와 살구 외에도 구아바.파파야.수박 등 속이 붉은 과일에 풍부하다.

살구는 칼륨 함량이 높다. 말린 살구엔 100당 1300㎎이 들어 있다. 대표적인 칼륨 공급식품인 말린 고구마(989㎎)보다 오히려 많다. 고혈압 환자에게 살구가 권장되는 것은 칼륨이 혈압을 적당하게 조절해주기 때문이다(서울여대 식품영양학과 이미숙 교수).

살구는 보통 생으로 또는 말려서 먹는다. 요구르트에 섞어 먹어도 좋다. 통조림에 든 살구는 과일 샐러드의 재료로 쓰거나 치즈를 먹을 때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빵에 넣어도 잘 어울린다.

간식용으로 인기 높은 말린 살구는 비타민C 함량이 생살구보다 적다(건조 과정에서 일부 파괴). 또 수분이 빠져나간 상태여서 100g당 열량이 288㎉(생과는 28㎉)에 달한다. 그래서 다이어트 중인 사람에겐 추천하지 않는다. 일부 말린 살구엔 아황산염(알레르기.천식 악화)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베타 카로틴.칼륨.칼슘.철분 등 건강.영양 성분은 날 것보다 풍부하다.

서양에선 살구씨 성분인 아미그달린(레어트릴이라고도 한다)을 '비타민 B17'이라고 부른다. 과거엔 이를 암환자에게 항암제 대신 제공하기도 했다. 살구씨를 즐겨먹은 미국 나바조 인디언이 암에 잘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미국 식품의약청(FDA)은 살구씨를 이용한 의약품을 불허하고 있다. 살구씨에 유독한 청산 성분이 극소량이지만 들어있다는 것이다.

한방에서도 살구씨는 약재다. 행인(杏仁)이라고 한다. 대개 기침.천식.기관지염 환자에게 처방한다. 동의보감에 "살구씨엔 독이 있으며, 너무 많이 먹으면 정신이 흐려지고 근육.뼈가 상한다"고 기술돼 있는데도 말이다. 독도 적당히 쓰면 약이 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잘 익고 싱싱한 살구를 골라 먹되 한번에 10개 이상 섭취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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