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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더라도 교통안전이 우선 ‘빨리빨리 문화’ 이젠 바꿔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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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빨리 문화’는 우리나라 경제 성장의 원동력으로 작용해 ‘한강의 기적’을 일궜다. 하지만 빨리빨리 문화의 이면에는 경쟁심과 이기심이라는 얼굴이 있다. 빨리 가기 위해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행동하거나, 속도에만 집중해 그에 따르는 문제점을 간과하는 것이다. ‘빨리빨리 문화’의 위험성은 특히 교통안전에서 두드러진다.

기고

올해 1월 파주에서 일어난 버스 하차 승객의 사망사고는 운전기사가 승객이 잘 내렸는지 확인하지 못한 채 출발한 것이 원인이었다. 버스 기사가 서둘러 출발하는 주된 이유는 배차 간격 유지를 위한 시간 압박 때문인 만큼 빨리빨리 문화의 슬픈 결과라 할 수 있다.

좀처럼 개선되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교통안전 저해 습관은 운전자와 보행자 모두에게서 나타난다. 먼저 운전자는 자신의 편의를 위해 과속·신호위반 등 교통사고를 유발하기 쉬운 위법행위를 서슴지 않는다. 또 적색점멸신호 교차로나 신호등이 없는 건널목 등 일시정지 구간에서 이를 지키지 않아 교통사고가 일어나기도 한다. 특히 신호 없는 횡단보도에서는 오히려 보행자가 차량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주는 풍경이 우리에게 더 익숙하다. 또 보행자는 빠르게 길을 건너려고 무단횡단을 함으로써 교통사고를 유발한다.

도로교통공단이 최근 발간한 ‘OECD 회원국 교통사고 비교’ 통계분석 자료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우리나라의 인구 10만 명당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7.3명으로 OECD 36개 회원국 중 29번째며, 자동차 1만 대당 사망자 수는 1.4명으로 31위였다.

‘빨리빨리’를 중시하는 운전자와 보행자의 악습이 교통안전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2001년 이후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꾸준히 감소세를 보이고 있으나, 각종 지표에서 선진국의 수준에 도달하려면 교통안전을 위한 노력에 더 힘써야 한다.

정부가 빨리빨리 문화를 지양하고 교통사고 사망자 감소를 위해 추진 중인 대표적 사업으로 ‘안전속도 5030’정책이 있다. 도로 제한속도를 도심부 주요 도로는 기본 50km/h 이하, 이면도로 등 보행자가 많은 도로는 30km/h로 조정하는 것으로 오는 4월 17일 전국적으로 시행된다.

제한속도를 줄이면 차량 통행에 크게 지장을 줄 것 같지만, 이에 대한 효과 분석 결과 차량통행속도 감소 폭은 단 3%에 그쳤다. 반면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38.9%, 중상자 수는 14.8% 감소해 인명피해 감소에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교통사고 사망자를 줄이고 안전한 교통환경을 만들기 위해 이제 우리는 빨리 가기보다 ‘조금 늦더라도 안전하게’ 가는 것을 우선시해야 한다. 더 적극적으로 정부와 관련 기관 및 단체, 그리고 모든 국민이 교통안전의식 향상을 위해 힘을 모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