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접촉에 미사일로 답한 북...멀어지는 북‧미 대화 조기 재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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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바이든 행정부와 대화를 거부한 데 이어 단거리 순항 미사일까지 발사하면서 정부가 희망하는 북‧미 대화 조기 재개 가능성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별로 변한 게 없다"며 회의적 입장을 내비친 가운데, 다음주 워싱턴에서 열리는 북핵 문제 관련 한미일 3자 협의에서도 북한에 대한 원칙적 대응에 무게가 실릴 가능성이 높다.

북한, 21일 단거리 순항미사일 2발 발사.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북한, 21일 단거리 순항미사일 2발 발사.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북한의 지난 21일 미사일 발사는 유엔 안보리 결의를 어기지 않으면서도 ‘더 큰 도발’의 길을 열어놓는 저강도 무력 시위다. 유엔 안보리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는 금지하고 있지만 순항 미사일은 결의 위반으로 보지 않는다. 따라서 이번엔 수위를 조절했지만 조만간 공개될 바이든 행정부의 새 대북 정책 방향에 따라 그 수위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줬다. 워싱턴포스트는 24일(현지시간) 보도에서 "미국의 북핵 위협 대응 방안이 아직 윤곽을 드러내지 않은 가운데, 김정은이 바이든을 향해 첫번째 도전에 나섰다"고 평가했다.

안보리 결의 위반 피한 저강도 도발 #향후 수위 높인 도발 가능성 열어놔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날짜도 미국, 중국을 모두 염두에 뒀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은 지난 18일 한‧미 외교‧국방(2+2) 장관회의와 미 국무‧국방 장관의 문재인 대통령 면담, 그리고 18~19일(현지시간) 미국 알래스카에서 열린 미‧중 고위급 회담을 모두 지켜본 뒤 미사일을 발사했다. 한반도를 둘러싼 핵심 관계국들의 논의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확인한 후 미사일을 쐈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북한이 미‧중 담판이 어떻게 되는지 보고나서 시험 발사를 한 것은 중국의 뒷배가 있어야 본격적인 대미 협상에서 강수를 둘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며 "김정은 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의 구두친서 교환 행보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연합뉴스]

북한의 무력 시위가 당분간 계속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북한의 군사 활동이 바이든 행정부를 향한 경고 메시지인 동시에 지난 1월 제8차 당대회를 통해 나타낸 국가방위력 강화 의지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김동엽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한은 새로운 무기 개발을 통한 무력의 현대화를 자신의 계획표대로 이행해 나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북‧미가 대화 대신 견제구만 던지는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가 임기 내 핵심 목표로 삼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재가동은 요원해지고 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다음주 말 워싱턴에서 한국, 일본의 카운터파트와 북한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회의를 주재할 예정이지만 한국 정부가 표방하는 대북 관여정책보다는 "외교 가능성을 열어두되 대북 압박을 재개할 수도 있다"(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지난 18일 한‧미 외교‧국방(2+2) 장관회의 후 기자회견 발언)는 원칙적 대응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예상된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AP=연합뉴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AP=연합뉴스]

이번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한‧미 당국이 즉각 발표하는 대신 약 사흘 뒤 미국 언론이 공개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앞서 지난달 미국이 뉴욕 채널 등을 통해 북한에 접촉을 시도했다는 사실도 로이터의 지난 13일(현지시간) 보도를 통해 먼저 전해진 뒤, 미국 정부가 즉각 해당 보도를 확인하고 이례적으로 상세하게 부연 설명을 하는 방식을 취했다. 이를 놓고 바이든 행정부가 외교와 압박을 동시에 강조하는 새 북핵 정책을 발표하기 전 ‘미국은 북한에 먼저 대화의 손을 내밀었지만 북한은 이에 화답하지 않고 무력시위만 이어갔다’는 점을 충분히 강조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김상진‧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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