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존경하는 기업인’이라고 치켜세웠다. 이를 두고 경영계에선 이 지사가 갑자기 친기업 메시지를 낸 이유와 박 전 회장과 어떤 인연이 있는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지사가 페이스북에 ‘〈존경하는 어떤 기업인의 이야기〉’라는 제목의 글을 올린 건 지난 20일이다. 이 지사는 박 회장이 최근 낸 책 『그늘까지도 인생이니까』의 표지 사진도 첨부했다. 이 책은 박 회장이 기업인으로서의 경험과 개인사를 담은 산문집이다. 이 지사는 이 책을 소개하며 “유명인의 뻔한 스토리가 아니라 재미도 감동도 짠함도 있다”고 적었다. 23일 오후까지 이 지사의 글에는 1300여명이 ‘좋아요’를 눌렀고 100개 넘는 댓글이 달렸다.
박 회장은 임기 동안 규제 샌드박스 사업을 중점적으로 운영하면서 젊은 창업가들과 친분을 쌓았다. 샌드박스는 일정 기간 동안 기존 규제를 면제ㆍ유예시켜주거나, 새 규정을 법적 시행일보다 먼저 활용할 수 있게 하는 규제 완화 사업이다. 대한상의는 기업 현장의 규제 해소 요청을 정부 담당 부처에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박 회장은 이 사업을 통해 얻은 경험과 소회를 책에도 담았다. 이 지사는 이 점을 언급하며 “이 분의 젊은 기업인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계속되고, 더 많은 열매를 맺게 됐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이지사, 규제개혁 협의로 박 회장과 친분
이 지사는 경기도 소관 규제에 대한 개선 요구를 듣는 과정에서 박 회장을 만나왔다고 한다. 지난해 9월엔 박 회장을 도청으로 초청해 ‘경기도 기업규제 발굴ㆍ지원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기도 했다. 당시 이 지사는 “ 불합리한 규제를 무조건 따르라고만 한다면 이는 공정이 아니다”며 “대다수의 경제인들은 경쟁할 수 있는 합리적 토대를 만들어 달라고 바란다. 이들이 훌륭한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들이 박탈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경기도에서 샌드박스 전담조직을 만들어 지원해주시니 감사한 마음”이라며 “긴밀히 협력해 신산업의 효시가 될 사업을 발굴할 수 있길 기대하고 경기도 전역이 새로운 산업이 싹을 틔우는 모범지역이 되길 희망한다”고 화답했다.
경영계에선 차기 여권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이 지사가 경제분야의 전문성 이미지를 드러내기 위해 박 회장과의 친분을 강조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한 기업 단체 관계자는 “현 정부의 지지율이 떨어진 이유 중 하나로 일자리와 자영업자 고충과 같은 경제 문제가 거론된다"며 "이 지사가 ‘경제 정책을 관심있게 다뤄왔다’는 메시지를 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용만 “정치는 안한다” 선 그어
다만 차기 대선 정국에서 박 회장이 이 지사를 돕는 것 아니냐는 일부 전망에 대해 대한상의는 강하게 선을 그었다. 박 회장이 수 차례 퇴임 뒤 거취를 묻는 질문에 “정치는 안 한다”고 강조해왔다는 것이다. 박 회장은 지난달 퇴임 기자회견에서도 “나는 기업인으로서 효율성과 생산성에 집중하는 쪽으로 머리가 굳어진 사람”이라며 “그런데 정치는 효율성만 생각하면 안 되는 영역이란걸 안다. 그래서 정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박 회장의 상의 회장 임기는 23일까지다. 대한상의는 24일 의원총회를 열어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신임 회장으로 추대한다. 최 신임 회장의 임기는 총회 의결 즉시 시작된다.
최선욱 기자 isotop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