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허용 추진… 건보 적용 안 받는 병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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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을 적용받지 않고 환자를 진료하는 병원을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병원 간 경쟁을 유도해 의료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조치다.

복지부는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된 '2005년 건강보험 업무계획'을 작성, 최근 김근태 장관에게 보고했다. 복지부는 자체 논의를 거쳐 이 계획을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할 예정이다.

지금은 의료기관이 문을 열면 의무적으로 건강보험 환자를 진료해야 한다. 그런데 이 제도(요양기관 당연지정제)를 폐지하고 병원이 건보환자 취급 여부를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계약제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다만 큰 병원이 일부 병동에서 제한적으로 비보험 환자를 진료하는 형태는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

건보 지정 병원에서 벗어나면 정부가 정한 수가(의료행위의 가격)의 통제를 받지 않고 진료비를 받을 수 있다. 약 처방이나 진료 횟수 등을 규정한 건보 진료지침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 진료비는 환자가 전액 부담해야 한다.

복지부는 이 방안이 시행되면 의료기술이 좋은 성형외과.피부과 의원이나 전문화된 중소병원들이 건보환자를 취급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 방안의 시행에 대해 복지부는 신중하다.

복지부 고위 관계자는 4일 "김 장관이 보고를 받고 '국민을 건강보험에 강제로 가입시켜 놓고 당연지정제를 폐지하면 어떤 의료기관은 아예 이용하지 못하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며 신중하게 다룰 것을 지시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대통령 보고 계획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당연지정제 폐지방침이 빠지면 시기가 다소 늦어질 수 있지만 시행방침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뉴스분석]
환자 선택권 넓어지고 의료 질 향상… 진료공백 없게 공공의료 더 확대해야

현행 당연지정제는 고난도 의료기술이나 평범한 기술이 똑같은 건보수가로 대접받는 제도다. 이렇게 획일화된 틀을 깨자는 게 정부가 추진 중인 계약제의 핵심 취지다. 경쟁력 있는 의사와 병원이 실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해 의료경쟁을 촉발하자는 것이다.

서비스가 다양해지면서 환자의 선택 폭이 넓어지는 장점도 있다. '3시간 대기, 3분 진료''붕어빵 진료'라는 비판을 받아왔던 의료 시스템이 획기적으로 바뀌는 것이다. 환자가 부담 능력에 따라 고난도.맞춤형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길도 열린다.

영국도 국영병원(NHS병원.건보지정 병원) 일색이었으나 1990년대 후반 민간병원(비보험 병원)을 허용하기 시작했다. 또 국영병원의 병상 10% 정도를 할애해 비보험 환자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독일.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계약제를 시행하고 있다. 대만이나 일본은 계약제를 실시하되 의료비를 부당 또는 과잉 청구한 병원에 대해서는 일정 기간 건보 환자를 진료하지 못하도록 제재한다.

이 같은 국제적 추세를 반영해 정부도 2003년 초 당연지정제 폐지를 '참여복지 5개년 계획'에 포함시켰다. 지난해 9월 관련 전문가로 구성된 건강보험발전위원회(위원장 양봉민 서울대 교수)도 계약제로 바꿀 것을 제안했다.

의료계는 환영한다. 의사협회 권용진 대변인은 "당연지정제는 사유 재산권 침해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계약제가 도입되면 사보험 도입 논의가 활발해질 전망이다. 건강보험과 사보험 중에서 선택할 수 있도록 하자는 논의도 나올 것으로 보인다. 시민단체들은 "계층 간 위화감을 조성하고 의료제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고 비판한다. 건강세상네트워크 김창보 사무국장은 "병원들이 건보제도에서 이탈할 경우 농어촌 진료 공백이 우려된다"며 "공공의료를 더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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