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암센터 박재갑 원장 새해 건강 메시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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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도, 지혜도, 학문도, 그리고 미덕도 건강 없이는 그 빛을 잃고 만다'. 프랑스 사상가 몽테뉴의 말처럼 건강은 돈으로 살 수 없는 첫번째 재산이다. 2005년 을유년 닭의 해에도 우리의 가장 큰 소망은 건강이다.

사람들은 흔히 묻는다. '어떻게 하면 암에 걸리지 않지요?'필자가 국립암센터 원장이니 독특한 건강법이라도 있는 듯 생각한다. 건강에 대해 사람들이 갖고 있는 두 가지 오해가 있다.

하나가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을 '타고난 팔자'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물론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체질이라는 것이 있다. 그러나 유전병을 제외한 대부분의 성인병과 암 유전자는 자극을 받을 때 비로소 촉발한다. 이른바 '방아쇠 이론'이다. 총이 있어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으면 질병은 발생하지 않는다. 방아쇠를 당기는 것은 자신이다. 나쁜 습관과 나쁜 환경의 부산물이다.

또 다른 오해는 '비방'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건강에는 원칙만 있을 뿐이다. 변칙이나 예외는 통하지 않는다. 인체는 과학이기 때문이다. 건강을 위해 노력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분명히 건강하고 오래 산다.

건강도 이젠 설계를 해야 한다. 재테크보다 더 중요한 것이 '헬스테크'다. 어렵지 않은 평범한 원칙에 '10년 수명'이 좌우된다.

첫째는 담배와의 완전 격리다. 자신만 피우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이웃까지 담배로부터 차단해야 한다. 담배는 독성 발암물질이며 중독성 마약이다. 청산가스.비소.페놀 등을 포함한 69종의 발암물질과 4000여 화학물질 덩어리다. 연간 1만9000명이 담배와 관련된 암으로 사망한다. 대구 지하철 참사가 4일에 한 번, 삼풍백화점 사고가 10일에 한 번씩 반복 발생하는 것과 같은 인명피해다.

미혼 여성과 청소년 흡연은 더욱 위험하다. 미혼여성의 흡연은 난자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청소년기의 흡연은 자라나는 세포의 유전자 이상을 초래한다. 담배 가격을 부담스러울 정도로 계속 인상해 미성년자의 흡연을 막아야 한다.

둘째는 뱃살을 빼야 한다. 식생활의 서구화와 함께 갑자기 들이닥친 '공공의 적'이 비만이다. 특히 중년의 뱃살은 배에 안고 사는 시한폭탄으로 불릴 정도로 만병의 근원이다. 성인병을 일으키는 고지방식은 유방암이나 대장암.전립선암 등 일부 암 발생과도 관련이 있다.

배에 기름이 끼면서 나타나는 현상이 인슐린 저항성 내당능(耐糖能)장애다. 간단히 말해 당뇨의 전단계 질환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고지방식은 혈액을 걸쭉하게 만들고 혈관벽에 노폐물을 쌓아 고혈압과 고지혈증으로 이어진다. 이는 채소 중심의 전통식단과 평소 육체적 활동(운동)을 꾸준히 하라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는 정기적인 건강검진이다. 대부분의 암은 검진을 통해 0기에서 차단할 수 있다. 0기란 1기 이전 표면 세포에서 돌연변이를 보이는 극히 초기의 암이다. 위암의 경우 간단한 점막 제거로, 또 자궁경부암은 자궁 입구의 일부 조직을 제거함으로써 암을 조기에 박멸할 수 있다. 대장암 역시 암의 전단계인 용종(폴립)을 제거해 80~90% 예방한다.

2005년에는 소득수준 50% 이하에 속하는 국민에게도 정부 예산으로 암 검진을 실시한다. 여기서 놓칠 수 있는 암이 폐암이다. 전체 암 사망자의 20%를 차지하는 폐암이 포함되어 있지 않는 것이다. 폐암의 경우 조기검진을 통해 사망률을 낮췄다는 학술 보고가 없기 때문이다. 폐암은 아직도 '금연을 통한 예방'만이 최선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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