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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재윤의 이코노믹스

땜질 그만두고 과감한 인센티브로 지방 분산 유도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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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부동산 시장 근본 처방은

박재윤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박재윤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한국은 지난해 1인당 국민소득이 3만644달러에 달해 세계 23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한국은 의·식생활과 더불어 인간의 3대 기본생활의 하나인 주(住)생활에서 아직도 안정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세계 10위권 경제 규모로, 사실상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국가로서 매우 낯부끄러운 일이다.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 됐는데도 #주거생활 불안은 낯 부끄러운 일 #역세권 공공주택은 과밀만 부채질 #‘경제수도’ 전국 분산이 현실적 대안

주생활이 왜 불안한지 보자. 지난해 1인당 경상 국민소득은 3.8% 감소했고 소비자물가는 0.5% 상승에 그쳤다. 이에 비해 지난해 말 공동주택 매매가격과 전셋값은 각각 전년동기 대비 16.2%와 12.0% 상승을 기록했다. 2019년 말 한국의 주택소유율은 56.3%에 그치고 있다. 결국 나머지 43.7%의 무주택 가구는 집값 폭등에 시달리고 있다.

서울 무주택가구 51.4%로 전국 최고

한국의 무주택 가구 비율이 이렇게 높은 것은 주택공급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2019년 말 주택보급률(일반 가구수 대비 주택수의 비율)은 104.8%에 달한다. 주택공급에 오히려 여유가 있다. 그런데도 2019년 말 전체 가구의 15.6%가 2주택 이상을 보유한 다주택자들이고 전체 가구의 43.7%가 무주택자들이다. 결국 주택시장이 강력한 공급자 시장을 형성해 다주택자들이 주택가격의 상승을 주도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 같은 주생활 실태를 지역별로 보면, 서울은 2019년 말 주택소유율(전체 가구중 자기 집을 소유하고 있는 가구의 비율)이 48.6%로 전국에서 가장 낮다. 2019년 말 공동주택 매매가격의 전년동기 대비 상승률은 18.4%로 전국 평균의 16.2%보다 높다. 서울은 전국 평균(43.7%)보다 훨씬 더 많은 51.4%의 가구가 무주택 가구로 남아 있다. 다른 지역보다 훨씬 더 큰 폭의 집값 폭등에 시달리고 있다는 의미다.

주택보급률은 어떤가. 서울은 2019년 말 96.0%를 기록하며 전국에서 유일하게 주택공급이 부족한 곳이다. 여기에다 전국 평균(15.6%)보다 낮은 전체 가구의 13.4%가 2주택 이상을 보유한 다주택자들이다. 전국의 43.7%보다 높은 전체 가구의 51.4%가 무주택 가구다. 주택시장이 전국의 다른 지역들보다 더 심하게 공급자 시장을 형성해 다주택자들이 주택가격의 상승을 주도하고 있다.

서울 가구밀도, 전국 평균의 31.7배

서울 집중에서 전국 7개 지역으로 경제수도 분산해야

서울 집중에서 전국 7개 지역으로 경제수도 분산해야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서울의 주택공급 부족이 주택의 절대적인 공급 부족 때문이 아니라 인구과밀로 인한 주택 수요 초과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2019년 말 현재 서울의 가구밀도는 ㎦당 6438가구로, 전국 평균(203가구)의 31.7배에 이르고 있다.

따라서 서울의 주택공급 부족 문제는 결코 주택공급을 늘려서 해결하고자 해서는 안 된다. 과밀해 있는 인구를 전국적으로 분산시켜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그러나 단기적 성과를 노려서 장기적으로 문제를 더 악화시키는 우를 범해서는 곤란하다. 역세권 개발 등의 비상수단으로 주택공급을 다소 늘려 봐야 근본적인 해결책이 안 된다. 주택 부족 문제를 온전하게 해결하지는 못하면서 서울의 인구과밀을 더욱 촉진해 중장기적으로는 주택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우려가 크다.

서울의 주택난 해결의 기본 방향은 서울을 행정수도(정치 및 사법 포함)로 남기고 현재 서울이 겸하고 있는 경제수도의 기능을 전국적으로 분산시키는 것으로 설정해야 한다. 행정수도로 남는 서울 이외에 인천경제수도(서울·인천·경기), 대전경제수도(대전·세종·충북·충남), 광주경제수도(광주·전북·전남), 제주경제수도(제주), 부·울 경제수도(부산·울산·경남), 대구경제수도(대구·경북), 그리고 춘천경제수도(강원) 등 7개의 경제수도가 전국에 걸쳐서 자리 잡도록 국가균형 발전을 도모해 나가자는 뜻이다.

주택 공급 확대로는 해결 못 해

경제수도의 지역 분산은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까. 첫째, 현재 중앙정부가 행사하고 있는 경제행정권을 지역 정부(수도권은 당분간 제외)로 대폭 이양해야 한다. 중앙정부는 지역 정부가 경제행정권을 부적절하게 행사할 때만 시정 조처를 하면 된다. 그 이외에는 모든 경제 행정의 의사결정과 집행이 지역 정부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도록 조정할 필요가 있다. 이는 수도권에 몰려 있는 기업의 지역 이전 촉진에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둘째, 지방세가 대폭 강화돼야 한다. 지역 정부가 기업을 대대적으로 유치하게 되면, 지역의 생활환경 및 교육환경을 대폭 개선할 수 있도록 지역 정부의 조세수입이 함께 증대돼야 한다. 소득세와 법인세를 비롯해 주요 조세수입을 중앙정부와 지역 정부가 적절한 비율로 공유하는 방안 등이 면밀히 검토될 필요가 있다.

셋째, 서울·인천·경기를 제외한 전국 각 지역에서 주택 관련 조세 우대가 이뤄져야 한다. 주택에 대한 조세는 다주택 소유에 대한 취득세와 보유세를 누진적으로 강화하면서 비수도권 지역에서는 1주택 소유에 대한 취득세와 보유세를 수도권 지역에 비해 크게 경감해 주는 방안을 함께 검토해볼 수 있다. 양도세의 경우에는 모든 지역에서 세율을 낮게 유지함으로써 주택의 매도를 용이하게 해주어야 할 것이다.

지방 교육·투자 환경 개선해야

넷째, 수도권 이외의 각 지역에서의 초중고 교육의 질을 대폭 높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서울·인천·경기를 제외한 모든 지역의 초중고 교사들에게 기본 급여의 10%에 해당하는 지역근무 특별수당을 지급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만하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수한 교사들이 경쟁적으로 지역근무에 나서는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아울러 서울·인천·경기를 제외한 전국 각 지역에서 방과 후 교육시설을 사립학원에 무료 제공하는 방안도 큰 의미가 있다. 이렇게 되면 사립학원이 한층 저렴한 수강료로 다양한 학습을 제공하는 계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

다섯째, 비수도권 지역에 장기할부 주택금융 제도가 조속히 도입, 정착돼야 한다. 예컨대 정기적인 소득이 있는 무주택자가 비수도권 지역에서 시가 4억원의 아파트를 사고자 하는 경우, 1600만원을 일시불로 지급하고 나머지 3억8400만원에 대해서는 연 3%의 금리로 50년간 매월 112만원씩 원리금을 균등분할상환하게 하면, 많은 무주택자가 주택을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비수도권 지역에 이 같은 장기할부 주택금융 제도를 도입·정착시킨다면, 비수도권 지역의 주택소유율이 획기적으로 상승하고 서울지역의 무주택자를 지방의 경제수도로 유인하는 결정적 계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 최소한의 일시불과 장기간의 원리금 상환을 감당할 수 있는 무주택자가 장기할부 주택금융을 손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제도화된다면 긍정적인 효과가 크다. 일시불과 원리금 상환을 부담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공공임대 주택에 의존해야 하는 가구와 주택 소유가 필요 없는 가구를 제외한 80% 정도의 가구가 주택을 소유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장기할부 주택금융은 주택이라는 자산의 보유를 동반하기 때문에 가계의 건전성에는 별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금융기관도 주택을 담보로 확보하기 때문에 안전성에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기존의 가계대출(전세자금 대출 포함)을 최대한 회수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통화를 충분히 공급해 재원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물론 목돈이 생기면 언제든 조기에 상환해 불필요한 이자 지출을 줄여야 한다.

국토부·서울시 차원서 해결 못 해

서울의 ㎢당 가구 밀도를 현재 6438가구에서 6128가구로 낮추면, 즉 서울로부터 19만 가구만 전국 7개 경제수도로 분산되면, 주택공급을 조금도 늘리지 않고도 전국의 주택난을 해결할 수 있다. 지역 균형 발전은 한국경제 전반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도 반드시 실현돼야 할 과제다. 이를 위해서는 지방의 기업투자 인센티브를 과감하게 강화해 주거 매력을 지금보다 몇 배 높게 만들어야 한다.

요컨대 한국의 주생활 안정, 특히 서울의 주택난 해결은 국토교통부나 서울특별시의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단편적인 주택건설이나 땜질 식의 주택거래 규제 등을 통해 근시안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경제수도의 분산과 장기할부 주택금융 제도의 정착 등 범정부 차원에서 중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접근해 나가야 할 것이다.

박재윤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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