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재신임'] 예상 시나리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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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정국에 대통령 재신임이라는 초대형 현안이 던져졌다. 노무현 대통령이 스스로 재신임을 묻겠다고 했고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이를 수용하고 나서 없었던 일로 하기는 어렵게 됐다.

예상되는 시나리오는 크게 두 가지다. 방법이 무엇이든 우선 盧대통령이 재신임을 받게 되는 경우다. 이렇게 되면 측근과 참모들의 비리연루 의혹과 임기초반 국정 혼선 등 그동안의 악재를 말끔히 털어버리고 새 출발을 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

친노세력의 결집과 盧대통령의 추락한 지지도 반전으로 이어지면서 안정을 찾을 전망이다. 이런 분위기는 6개월 앞으로 다가온 내년 총선에서 청신호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盧대통령은 집권 후반을 이끌어갈 확고한 기반을 마련하는 전기를 맞을 수도 있다. 불신임되면 문제는 복잡해진다. 盧대통령은 임기를 채우지 못한 대통령으로 기록된다. 그 이후를 놓고 나라 전체는 격랑에 빠진다.

이때는 헌법 규정과 정치권의 합의하에 대통령 선거를 다시 치러야 한다. 다만 이때도 논란은 남는다. 미국의 경우 대통령이 궐위되면 부통령이 승계해 잔여임기를 채운다.

하지만 우리 헌법은 대통령의 재신임과 관련한 절차가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지 않다. '대통령이 궐위 또는 사고로 인해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땐 국무총리, 법률이 정한 국무위원의 순서로 권한을 대행한다'(헌법 71조)거나 '대통령이 자격을 상실한 때엔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거한다'(68조)는 조항이 있을 뿐이다.

이럴 경우 내년 4월 총선과의 연계 문제, 새 대통령의 임기가 5년이냐 물러난 대통령의 잔여임기냐 하는 문제 등을 둘러싼 논란이 일게 된다. 정치권의 합의에 따라서는 내각제 개헌 논쟁이 수면 위로 급부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치권에선 제3의 가능성도 거론된다. 盧대통령의 발언에도 불구하고 어떤 형식으로도 재신임을 묻는 절차가 진행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대통령의 재신임 여부가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盧대통령의 결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盧대통령은 재신임의 방법과 시기를 제시하지 않은 채 정치권과 국민여론의 '공론화'에 맡겨버렸다. 이 때문에 논쟁만 벌이다 흐지부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방법이 제시되더라도 질 것으로 예상한 쪽에서 그 같은 방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없고, 논란의 와중에 국론만 분열될 것이라는 견해가 나오고 있다.

이렇게 될 경우 약속 이행 시비로 盧대통령과 야당 간 격돌이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결국 정국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 속으로 빠져들 공산이 크다.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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