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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보드에서는 성공했지만…BTS는 왜 그래미 상 못 받았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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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8호 22면

1970년생 아버지는 소싯적 주한미군방송(AFKN) 라디오에서 DJ 케이시 케이슴(1932~2014)이 진행하는 ‘아메리칸 TOP40’를 들었다. 토요일 오후 4시간, 빌보드 싱글 차트의 ‘신곡’ 40개를 몽땅 들을 기회는 이때뿐이었다. 그는 “80년대 국내 라디오에서는 몇 곡의 팝송을 돌려막기 식으로 내보내서, 같은 곡을 하루에 2~3차례 들을 때도 있었다”고 말했다.

팝의 상징 빌보드 차트 #주크박스서 출발, 스트리밍의 시대로 #80년대 AFKN서만 온전히 청취 가능 #빌보드와 그래미 큰 상관 관계 없어

지난 3월 14일(현지시간) 제63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단독 공연을 펼친 방탄소년단(BTS). '다이너마이트'로 그래미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에는 실패했다. [사진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지난 3월 14일(현지시간) 제63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단독 공연을 펼친 방탄소년단(BTS). '다이너마이트'로 그래미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에는 실패했다. [사진 빅히트엔터테인먼트]

2000년생 딸도 빌보드를 찾는다. 빌보드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방탄소년단(BTS) 때문이다. BTS의 '다이너마이트'가 빌보드 핫100(싱글) 1위에 오르면서다. 딸의 친구들도 매주 수요일 밤이면 업데이트되는 빌보드 핫100을 눈여겨본다. 한데, 딸은 아버지 때와 달리 유튜브로 빌보드 히트곡을 듣는다. 그는 "내가 원하는 곡을 골라 그때그때 찾는다"고 말했다.

4050 세대 '빌보드 키즈'를 만든 빌보드 차트가 인터넷과 소셜미디어(SNS)를 타고 2030 세대의 눈길을 끌고 있다.

국제음반산업협회(IFPI)가 밝힌 2019년 녹음 음악 매출 202억 달러(약 22조 7000억원) 중 스트리밍 매출은 114억 달러(약 12조 8000억원). 56.1%로 녹음 음악 매출 1위를 차지한다. 다운로드(7.2%)를 압도한다.

『365일 팝 음악사』를 쓴 정일서 KBS PD는 "다운로드가 음악을 소장하는 개념이라면 스트리밍은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는 것"이라고 밝혔다. 딸은 다운로드에도 열심이다. BTS의 '다이너마이트'는 빌보드 핫100 1위에 3주 오른 뒤 20일 현재 43위다. 29주째 50위권 내에 머무르고 있다. BTS의 팬덤 ‘아미’가 받쳐주고 있다. 이대화 대중음악평론가는 “아미는 다운로드와 피지컬(음반)에 집중하는 전략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빌보드는 순위 산출 때 스트리밍보다 다운로드와 피지컬 부문에 더 가중치를 둔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이번 주 빌보드는 '다이너마이트'가 주중 가장 많은 다운로드 횟수를 기록했다고 보여준다. 별도의 빌보드 다운로드 차트에서도 1위다. 이대화 평론가는 "팬들의 다운로드로 이번 주 43위를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 BTS가 지난 14일(현재시간) 열린 제63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수상자 명단에 들어가지 못했다. ‘다이너마이트’로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부문 후보에 올랐지만, 트로피는 레이디 가가와 아리아나 그란데의 ‘레인 온 미’에 돌아갔다. 빌보드 핫100 연간 순위는 '다이너마이트' 38위, '레인 온 미' 48위였다.

레이디 가가(왼쪽)와 아리아나 그란데가 2020년 8월 30일(현지시간)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에서 '레인 온 미'를 부르고 있다. [AP=연합뉴스]

레이디 가가(왼쪽)와 아리아나 그란데가 2020년 8월 30일(현지시간)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에서 '레인 온 미'를 부르고 있다. [AP=연합뉴스]

# 클래식·찬송가도 빌보드 상위권에

빌보드는 미국 대중음악의 상징이다. 미국은 세계 최대 음악 시장이다. IFPI가 밝힌 미국의 2017년 녹음 음악 기준 매출은 59억 달러(약 6조6000억원). 2위 일본(27억 달러)의 2배가 넘는다. 그래서 미국 시장은 뮤지션들의 성공을 판가름하는 무대라 일컬어진다.

1964년은 영국 그룹 비틀스가 미국 시장에 진출한 해다. 1964년 2월 9일 비틀스 멤버들이 당시 미국에서 가장 인기가 있었던 '에드 설리번 쇼'의 호스트 에드 설리번과 함께 하고 있다. 왼쪽부터 링고 스타, 조지 해리슨, 에드 설리번, 존 레넌, 폴 매카트니. [사진 비틀스바이블]

1964년은 영국 그룹 비틀스가 미국 시장에 진출한 해다. 1964년 2월 9일 비틀스 멤버들이 당시 미국에서 가장 인기가 있었던 '에드 설리번 쇼'의 호스트 에드 설리번과 함께 하고 있다. 왼쪽부터 링고 스타, 조지 해리슨, 에드 설리번, 존 레넌, 폴 매카트니. [사진 비틀스바이블]

1964년 2월, 영국에서 입지를 다진 비틀스가 미국 시장 문을 두드렸다. ‘브리티시 인베이전(영국 뮤지션들의 미국 시장 침공)’의 포문을 열었다. 비틀스는 그해 2월을 숨 가쁘게 지낸다. ‘아이 원트 투 홀드 유어 핸드’가 1일 빌보드 1위에 오른다. 7일 미국 뉴욕에 도착해 이틀 뒤 당시 최고 인기 토크쇼 ‘에드 설리번 쇼’에 출연한다. 그해 4월 14일 자 싱글차트는 1위부터 5위까지가 비틀스 노래였다.

빌보드 진출은 한국에서는 다른 행성의 이야기였다. 80년대 초반, 우리나라 가수 누군가의 노래가 빌보드에 진입했다는 얘기가 돌기도 했다. 빌보드를 향한 '빌보드 키즈'들의 열망이 부른 뜬소문이었다.

2019년 5월 BTS가 ‘비틀스처럼’ 미국 토크쇼에 출연했다. 해외 언론에서 먼저 BTS를 비틀스에 견줬다. K팝의 미국시장 본격 진출을 알리는 무대였다.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는 “해외에서는 BTS를 유튜브 시대의 비틀스라고 여기고 있다”고 했다.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도 “음악 산업의 흐름을 바꾸고, 하나의 문화코드가 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BTS는 비틀스와 유사하다”고 말했다.

비틀스와 BTS 사이에는 두 세대, 즉 60년 가까운 차이가 난다. 아버지와 딸의 한 세대보다 폭이 넓다. 그새 빌보드도 변했다. 음악 유저(이용자)도 변했다. 과거 빌보드 핫100에는 클래식(러브 이즈 블루, 1위), 찬송가(로드스 프레이어, 4위)도 올랐다.

빌보드는 1958년부터 주크박스 이용 횟수, 음반 판매량, 라디오 송출 횟수 등을 고려해 순위를 매겼다. 순위의 중요성을 감안, 라디오 방송 분량을 늘리기 위해 레코드사와 DJ가 뒷돈을 주고받고 노래를 틀어주기도 했다(페이올라 청문회 사건). 마이클 잭슨, 마돈나, 에미넴, 브루노 마스, 마룬5, 테일러 스위프트 등이 빌보드를 발판 삼아 이름을 날렸다.

지난 3월 14일(현지시간) 제 63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앨범 '포크로어'로 올해의 앨범상을 받은 테일러 스위프트가 포즈를 취하고 이다. [AFP=연합뉴스]

지난 3월 14일(현지시간) 제 63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앨범 '포크로어'로 올해의 앨범상을 받은 테일러 스위프트가 포즈를 취하고 이다. [AFP=연합뉴스]

대중음악은 스트리밍 시대로 접어들었다. 70, 80년대 유명 록그룹 플리우드맥의 ‘드림스’가 지난해 9월 빌보드 핫100에 21위로 재등장했다. 78년 1위에 오른 지 42년 만이었다. 한 SNS 인플루엔서가 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틱톡에 올린 뒤 음원 스트리밍이 폭증한 결과다. 정일서 PD는 “빌보드에서 SNS를 통한 바이럴(전파)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케이스”라고 밝혔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2020 음악산업 백서』를 통해 “스트리밍 증가는 사용자가 직접 구성하는 플레이리스트가 음악 유통의 주요 채널이 되면서 생긴 현상”이라며 “기존의 음악 마케팅이 신곡 위주로 구성된 것에 비해 사용자 중심의 스트리밍 환경에서는 과거의 히트곡, 숨은 명곡들이 더 중요해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BTS를 비롯한 한국 아이돌 그룹은 SNS를 기반으로 활동한다.

# 빌보드 연간 1위 곡, 그래미선 홀대도
빌보드 성적이 그래미 수상과 연관성이 있을까. 전문가들 반응은 미묘하게 갈린다. 임진모 평론가는 “그래미에서 올해의 앨범에 뽑힌 테일러 스위프트가 빌보드에서는 눈에 띌만한 성적은 아니었다”며 “결국은 음악성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김작가 평론가도 “빌보드 성적은 상징적이지, 절대적이지는 않다”고 말했다. 20일 현재 53주간 핫100 10위권 내를 유지하고 있는 ‘블라인딩 라이츠’를 부른 위크엔드는 아예 그래미 후보에 오르지도 못했다. '블라인딩 라이츠'는 빌보드 연간 차트 1위 곡이기도 하다.

위크엔드가 지난 2울 7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 탐파에서 벌어진 NFL 수퍼보울 하프타임 중 열창하고 있다. 위크엔드는 '블라인딩 라이츠'로 2020년 빌보드 연간 핫100 1위를 차지했지만 제63회 그래미 어워드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AP=연합뉴스]

위크엔드가 지난 2울 7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 탐파에서 벌어진 NFL 수퍼보울 하프타임 중 열창하고 있다. 위크엔드는 '블라인딩 라이츠'로 2020년 빌보드 연간 핫100 1위를 차지했지만 제63회 그래미 어워드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AP=연합뉴스]

하지만 이대화 평론가는 “빌보드는 판매량을 결산하는 차원”이라면서도 “빌보드에서 1위를 하게 되면 인지도를 굉장히 높여주기 때문에 과정으로서도 중요하다”고 분석했다. 정일서 PD는 “빌보드 성적이 그래미 수상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면서도 “빌보드에서 눈에 띄는 뮤지션들이 그래미에서도 수상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빌보드와의 상관관계를 떠나 BTS는 왜 이번에 그래미 수상에 실패했을까. 임진모 평론가는 "BTS의 경우, 경쟁자들(레이디 가가, 테일러 스위프트 등)이 워낙 강력했다"며 "게다가 그래미에서 보이밴드, 그것도 처음으로 후보에 오른 뮤지션은 꺼려하는 경향이 있어 수상이 어렵다는 의견이 처음부터 지배적이었다"고 주장했다. 이대화 평론가는 "강력한 경쟁자들이 그래미의 표를 분산하면서 BTS에게 돌아갈 표는 상대적으로 적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포스트 말론이 지난 3월 14일(현지시간) 제63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포스트 말론은 '할리우드스 빌리딩'으로 2020년 빌보드 연간 앨범차트 1위에 올랐다. [AP=연합뉴스]

포스트 말론이 지난 3월 14일(현지시간) 제63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포스트 말론은 '할리우드스 빌리딩'으로 2020년 빌보드 연간 앨범차트 1위에 올랐다. [AP=연합뉴스]

비틀스는 그래미 신인상을 받았다. 1964년 미국 진출 후 70년에 해체할 때까지, 햇수로 7년간 그래미 수상은 4번(신인상 포함, 해체 후 수상은 제외)이었다. 이대화 평론가는 "BTS의 이번 그래미 수상 실패는 K팝이 아직 미국에서 탄탄히 뿌리를 내리지 않았다는 걸 보여준다"며 "BTS는 앞으로도 빌보드에서 좋은 성적을 내며 그래미 수상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레 전망했다. 빌보드는 그래미로 향하는 징검다리다.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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