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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2+2 회의<한·미 외교·국방장관>서 드러난 미국의 기조 변화,직시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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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후 청와대에서 미국의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을 접견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후 청와대에서 미국의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을 접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7~18일 5년 만에 서울에서 개최된 '한·미 2+2 (외교·국방 장관) 회의'에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유달리 강한 톤으로 북한과 중국의 인권 탄압을 비난했다. 이어 중국의 공격적 행동에 대해 '동맹의 공통된 접근'을 촉구했다. 미 국무장관이 서울에서 북한 인권은 물론 홍콩·신장의 인권 탄압을 구체적으로 거론하며 공동 대응을 요구한 건 전례가 없는 일이다.
 블링컨 국무장관은 본 회담에서도 북한·중국 인권에 대한 한국의 명확한 입장 표명과 한·일 관계 개선을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쿼드(Quad: 미국·일본·인도·호주 안보 협의체)와 유럽연합(EU) 등 동맹들과 조율을 통해 숙성시킨 뒤 던진 카드란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부가 기존의 전략적 모호성만 고수하며 수용을 기피할 경우 대한민국은 동맹울타리 밖의 외톨이 신세로 전락할 공산이 크다.
  이런 우려는 회담이 끝나자마자 현실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의 두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빈틈없이 공조할 것"이라고 했다.'한반도 비핵화'는 주한미군의 철수를 전제한 북한의 '조선반도 비핵화'와 같은 뜻이란 오해를 살 수 있다. 블링컨 장관이 회담 모두 발언에서 '북한 비핵화'라고 콕 집어 발언한 것과 대비된다.
 또 기자회견에서 나온 '싱가포르 북·미 합의 계승' 질문에 대해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싱가포르 북·미 합의(계승)를 고려해야 한다"고 했지만, 블링컨 장관은 아예 언급을 피했다. 워싱턴에선 2018년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은 '외교 실패'의 전형으로 낙인찍혀 사실상 폐기돤 상태다. 블링컨의 침묵이 '거부'의 메시지로 해석되는 이유다.
 이런 엇박자는 바이든 행정부 출범으로 급변한 미국의 대북 기조를 외면한 정부의 비현실적 대응에 근본 원인이 있다. 블링컨 장관은 파트너인 정 장관과 말문을 트기 전에 북한·중국의 인권 상황을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공동 대응 필요성을 역설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양보할 수 없는 선'을 못 박은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마당에 정부는 한·미 연합 훈련을 3년째 축소 운용하면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띄우려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연합 훈련의 완벽한 철폐'를 요구하는 김여정의 담화였다.
 동맹과 공조해 북한에 채찍과 당근을 병행하려는 바이든 행정부 시대에 트럼프 시절의 '정상회담 쇼'는 먹히지 않는다. 정부는 지난 4년간 눈에 띄게 느슨해진 한·미 공조를 복원해 대북 제재를 강화하면서 북한을 대화로 유인할 전략 수립에 워싱턴과 머리를 맞대야 한다. 그러려면 발빠른 한·일 관계 개선을 통한 한·미·일 협력 회복이 필수적이며 북한 인권 문제에도 목소리를 내는게 필요하다. 블링컨 장관의 발언에서 보듯 미국은 대중 압박에 북한을 끼워 넣는 '커플링' 전략으로 선회했다. 대중 압박 동참이 어렵다면 북한 인권에라도 목소리를 내야 동맹이 굴러갈 수 있다는 엄연한 현실을 냉정하게 받아들일 때다. 쿼드 참여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미국의 과도한 대중 압박에 제동을 걸며 운신의 폭을 넓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일본과 인도·호주도 쿼드를 활용해 국익을 챙기고 있지 않은가.

미, 북·중 인권 비난하며 공동 대응 요구 #정부는 침묵하며 '한반도 비핵화' 강조 #현실 인정하고 동맹복원 전력 기울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