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정신건강센터] 환우와 함께하는 삶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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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그녀와의 만남

아직 환자들이 오지 않을 아침시간에, 강남구 청담동 4층 건물의 3층에 위치한 김정일 신경정신과를 방문했다. 몇 년 전 메스컴을 자주 오르내리던, 그리고 간혹 지면이나 책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던 얼굴에 비해 좀 더 부드러워진 인상의 김정일 원장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그 옆에는 조용한 미소의 비서라고 하는 여자 분이 함께 있었다.

인터뷰시작은 옆에 앉은 그녀와 함께 였다. 함께 있는 이유가 궁금했지만 인터뷰는 시작되었고 조금 지나서야 그녀의 존재를 깨닫게 되었다. 그녀는 김정일 원장의 치료 프로그램인 '라이프디자인'의 도움으로 건강을 찾게 된 경우에 해당한 이였다. 다소 조용한 느낌은 있었지만 예의를 차리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란 생각이 들었고 그녀는 가끔 우리의 질문에 부드럽게 자신의 의견을 조용히 대답해주었다. 그녀는 우울증으로 몇 년간 치료를 하다 지금은 여기서 원장의 비서일을 하면서 상담학을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첫만남에서 여러 가지 설명만으로 그치기보단 김원장만의 독특한 치료프로그램의 산 증인인 그녀를 만나게 함으로써 자신의 설명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게 해준 김원장의 배려가 느껴졌다. 물론 그녀가 우리와 함께 한 것도 '라이프디자인'의 한 부분이었겠지만….

2. 김정일신경정신과는 어떤 치료를…

'김정일신경정신센터의 '라이프디자인'에 참여하는 환자는 일정기간(회복될 때까지)을 의사와 함께 식사하고 여행하고, 의사의 개인적인 만남에 동행하고 때론 술이나 차를 함께 마시면서 시간을 함께 보낸다.' 즉 단순히 진료실 안에서만 의사와 환자가 만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생활밀착형 프로그램을 통해 의사는 환자의 삶에 전인적인 접근을 시도하게 된다.

하루에 몇 시간 혹은 24시간을 함께 할 수도 있는 이런 치료방식은 현행 의료보험제도상으로는 지원이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원장은 왜 이런 치료 방식을 주장하고 있을까?

"정신과 환자들은 좀더 친밀하고 세밀한 접근이 필요한 이들입니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의 면담만으로 그들을 이해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치료는 더 더욱 어렵습니다. 의사는 환자와 함께 해야 합니다. 전 함께 하는 것 이상의 치료는 없다고 봅니다.
환자와 동거동락하면서 그들의 삶을 터치해나갈 때만이 맘의 빗장이 열리고 상처가 회복됨으로써 건강함에 대한 경험들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렇게 한번 경험된 자유함은 그들로 하여금 다시 어두운 기억(예전의 방식)속으로 빠져들지않게 합니다.
현재는 이러한 생각들이 제도적으로 뒷받침이 안되어서 조금 기다리고 있는 상태지만 현재 몇 명의 환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라이프디자인'프로그램을 좀 더 시스템화하여 적용해볼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전 이 방식이 정신질환자의 회복에 도움이 된다고 확신합니다." 라고 대답하면서 김정일 원장은 옆에 앉은 여자 분도 그런 프로그램 후에 회복된 경우라고 소개해준다.

여전히 잔잔히 미소만 짓고 있던 그녀는 자신의 과거력이 알려졌음에도 전혀 미동하지 않고 오히려 김 원장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담은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백 마디의 말보다 더 설득력 있는 장면이었다.

김원장은 최근엔 그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2명의 환자와 일본여행을 다녀왔다고 한다. '그 사람을 알려면 함께 여행을 해보라'고 했었다. 의사와 함께 여행 중의 동거동락을 통해 자신 안의 건강함을 찾게 되었을 그 행복한 그들과 그런 혜택 속에 있지 못한 대다수의 환자들이 순간 비교가 되어 씁쓸함을 안겨주었다. 좀 더 많은 환자들이 그런 혜택 속에 놓이게 될 날이 속히 오길 간절히 바란다.

3. 김정일신경정신센터에서 하고 있거나 했던 작업들…

김정일신경정신센터에서는 개인정신과의원의 성격상 진료실이나 면담실을 구성하는 것 이상을 기대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김원장이 정신과 치료에 대해 갖고 있었던 생각을 직접 현장에 시도해본 경우인 '카페'나 '사이코드라마/음악치료'를 위한 공연장을 같은 건물 내에서 접할 수 있었다. 물론 김정일신경정신센터에서 부설로 운영하고 있거나 했던 것이었다.

현재는 안타깝게도 경제적인 이유로 운영을 잠시 중단하고 있지만 병원건물 2층에 위치한 카페(사진참조)는 환자와 의사가 자유롭게 만나 차나 술을 마시면서 대화를 하고 정신질환자들이 직접 일을 하기도 하면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그런 재활과 치료의 공간으로 활용되던 곳이었다. 그다지 오갈 데가 많지 않은 환우들에게 이 카페가 얼마나 소중한 자리였을까라는 다소 감상적인 생각에 잠겨 아직 사람의 온기가 남아있는 듯한 카페를 돌아보며 다시 열게 될 그날이 오길 기원해본다. 이런 시도를 한 것만으로도 칭찬을 받을 충분한 이유가 있는 그에게 속으로 뜨거운 박수를 보내면서….

4층에는 사이코드라마나 음악치료를 위한 소극장규모의 공연장이 있다.(사진참조) 사이코드라마는 환자가 원할 시에는 언제든지 비공개로 진행되고 매주 화요일 저녁 7시에는 공개 사이코드라마를 진행한다고 한다. 이날은 관람을 원하는 이는 누구든지 참여할 수 있다.

물론 이 센터에서도 환자들의 치료를 위해 그 외 현대정신의학에서 사용되고 있는 약물치료를 포함한 모든 치료는 기본으로 하고 있었다. 탐방을 통한 소개는 좀 더 특별한 것에 초점을 더 두고 있을 뿐이다.

4. 김원장의 정신과 환자들/일반인들에게 한마디…

지금도 정신질환으로 자신을 제대로 만나지 못하고 여러 병원을 다니며 고통 중에 있을 환자들에게 한마디를 부탁하니 김원장은 "열심히 살려고, 즐겁게 살려고 애써야 합니다. 자신을 게으름, 공포, 두려움에 가둬두지 말고 부지런히 움직이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시면 건강할 수 있습니다.
동시대는 아니지만 역사에 중요한 흔적을 남긴 이들 중에 정신질환으로 고생한 이들이 많습니다. 이름만 들면 알만한 이들로 베토벤,모짜르트,고호,뭉크,세잔느,비비안리…등 많은 이들이 정신질환으로 힘들어 했지만 질환에 지지않고 삶을 성공적으로 이끌었습니다." 라는 약을 꼬박꼬박 잘 먹고 치료에 빨리 임하라는 정신과의사다운 조언이 아닌 다소 인간적인 조언을 남겼다. 판에 박힌 답을 할 것이라고는 기대하지않았지만 그의 대답을 듣는 순간 치료와 무관한 나에게도 웬지 힘이 실리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아졌다.

마지막으로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 극복의 차원에서 일반인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물음에 "모든 사람은 현재 언급되는 모든 정신질환을 다 앓을 수 있고 앓고 지내왔다고 보시면 됩니다. 단지 좀 더 악화된 경우가 정신질환의 형태인데 그렇게까지 가지 않아서 모를 뿐이지요. 즉 누구나 정신질환으로 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마음과 정신을 너무 소홀히 생각합니다. 서구의 경우는 이런 관리부분에 전문가의 개입이 적극적인 편이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하지않기 때문이죠. 저는 요즘 우리 사회에 팽배해있는 모든 현상은 정신에너지를 효율적으로 관리하지 못하는 데서 발생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 사회도 전문가의 도움을 근간으로 한 개개인의 효율적인 정신에너지 관리가 시급하다고 봅니다."라고 일반인들의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을 강조했다.

5. 탐방 후 생각….

아픈 것만이 전염되는 것이 아니다. 건강도 전염이 된다고 생각한다. 건강한 인격, 건강한 사고를 가진 사람의 옆에 있으면 우리는 웬지 자신의 사고나 생각도 정리가 되고 한층 건강해진 느낌을 가지는 경험, 더러 해보았을 것이다.

김정일 신경정신센터의 '라이프디자인'이 그런 예가 아닐까싶다.

요즘은 예전보다는 여러 단체 및 전문가의 제안으로 상황이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정신장애인들의 치료와 관련해서는 치료할 곳보다는 수용할 곳을 더 찾는 것이 현주소이다. 그만큼 그들을 둘러싼 주변환경이 어려운 탓도 있겠지만 여전히 수용보다는 탈수용을 외치는 일부 전문가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기에는 사회적인 편견의 벽이 너무나 높다.

정신질환자에게는 호사정도의 수준이라고 할 수 있는 치료적 혜택을 받고 있는 그룹은 전체 환자의 몇 퍼센트나 될까? 물론 회의적인 숫자로 대답 될 수 밖에 없는 자조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정신장애인의 삶의 질, 즉 헌법이 명시한 모든 국민이 행복하게 살 권리에 그 국민의 범주에 정신장애인도 포함되므로 그들의 치료와 더불어 인권의 문제 또한 끊임없이 여러 관련 현장에서 반드시 제기되어야 할 이슈이다.

그런 점에서 오늘 탐방한 김정일신경정신센터의 일부에서 보기에는 돈키호테와 같은 시도라고 볼 수 있는 치료방식의 시도는 다소 제도적인 받침의 결여로 힘이 꺽일 수는 있겠지만 해당영역의 전문가들에 의해 꾸준히 제기되어짐으로써 환자들 뿐 아니라 일반인들에도 많이 알려져야 할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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