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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권양숙·박원순 사찰' 원세훈 직권남용 유죄 파기 환송

중앙일보

입력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장으로 재임하며 정치관여 및 국정원 예산 유용, 국가정보원법상 직권남용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아온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대법원에서 파기환송 판결을 받았다. 2심에서 무죄 및 면소 판결을 받았던 부분을 파기환송한 것이다.

"형법 보다 국가정보원법 직권남용 폭넓게 적용"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11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 등 손실 등 혐의로 기소된 원세훈 전 원장에게 징역 7년과 자격정지 5년을 선고한 2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원 전 원장 등이 직권을 남용해 국정원 직원들이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다는 공소사실에 대해 무죄 또는 면소로 판단한 원심판결에는 관련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며 검사측 상고를 받아들였다.

권양숙·박원순 감시·미행 무죄 파기

상고심에서의 쟁점은 ▶고(故)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 동향 감시 및 ▶고(故) 박원순 전 시장에 일본 출장을 사찰하라고 했던 원 전 원장의 지시가 ‘국정원법상 직권남용죄’에 해당하는지였다.

지난해 8월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13부(재판장 구회근)는 “권 여사의 동향을 감시하라고 지시한 원 전 원장의 행위는 직권의 남용에 해당하지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때’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무죄로 판결했다.

공무원이 자신의 직무 권한에 속하는 사항에 대해 실무 담당자에게 직무 집행을 보조하게 하더라도 이는 공무원 자신의 직무집행으로 귀결될 뿐이므로 원칙적으로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때’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는 판례를 따른 것이다. 당시 항소심 재판부는 박 전 시장 미행 지시 혐의에 대해서도 같은 판단을 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런 2심의 판단이 잘못됐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각 지시는 형식적·외형적으로 일반적인 직무 권한에 속하는 사항에 관해 직권을 행사하는 모습을 갖췄고 ▶국정원 직원들은 직권남용의 상대방에 해당한다고 봐야 하며 ▶원 전 원장 등이 지시를 통해 국정원 실무담당자들로부터 법령상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봐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2심에서 국정원법상 직권남용죄에 대한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았다는 취지다. 이에 덧붙여 항소심에서 명진 스님 사찰 관련해 공소시효가 지나 면소 판결한 부분 역시 이날 파기됐다.

국정원법상 직권남용죄, 권한 남용 예방이 목적 

대법원은 “직권남용으로 인한 국가정보원법 위반죄의 성립 여부를 판단할 때 고려해야 할 사안에 대해 설시한 최초의 판결”이라고 이번 판결의 의미를 설명했다. 일반적인 직권남용죄를 규정한 형법 제123조 위반을 판단할 때와 국가정보원법 제22조(직권남용죄) 위반을 판단할 때의 심리는 달리 고려해야 할 점들이 있다는 뜻이다.

대법원은 “국정원법의 전신인 구 국가안전기획부법부터 국가안전기획부 직원들의 직권남용행위를 금지하는 조항이 있었고, 형법상 직권남용죄보다 무겁게 처벌하도록 법이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이는 국정원의 권한이 남용될 경우 국민 기본권 침해와 국가기관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신뢰를 훼손할 위험이 크기 때문이고, 현행 국정원법에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국정원법상 직권남용죄는 7년 이하 징역과 7년 이하 자격정지가 법정형이지만 형법상 직권남용죄는 5년 이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형으로 정해져 있다. 대법원은 “국정원법에 직권남용죄 처벌 규정을 별도로 둔 것은 국정원장 등의 권한을 남용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직권남용으로 인한 국정원법 위반죄 성립 여부는 직권남용죄 일반에 적용되는 법리뿐 아니라 국정원의 법적 지위와 영향력, 국정원 직무와 직무수행 방식의 특수성, 국정원 내부의 엄격한 상명하복 지휘체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의 파기환송으로 원 전 원장은 서울고법에서 파기환송심을 받게 될 전망이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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