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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방위비 1조 1833억, 4년 뒤 1.5배로...정부 "국력 맞게 기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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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정부가 10일 올해 주한미군 주둔 비용으로 1조 1833억원을 부담하고 5년 뒤 약 1조 5000억원까지 인상이 가능하다는 내용의 제11차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SMA) 내용을 공개했다.

외교부는 7일(현지 시각) 한미 방위비 분담 협상 결과 원칙적 합의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사진은 미국 워싱턴DC에서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체결을 위한 회의에 참석한 정은보 한미 방위비분담협상대사(오른쪽)와 미국의 도나 웰튼 미 국무부 방위비분담협상대표. 연합뉴스

외교부는 7일(현지 시각) 한미 방위비 분담 협상 결과 원칙적 합의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사진은 미국 워싱턴DC에서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체결을 위한 회의에 참석한 정은보 한미 방위비분담협상대사(오른쪽)와 미국의 도나 웰튼 미 국무부 방위비분담협상대표. 연합뉴스

한국 측 협상팀 수석 대표를 맡은 정은보 한ㆍ미 방위비분담협상 대사는 이날 오후 영상 메시지를 통해 “이번 합의를 통해 주한미군의 안정적 주둔에 기여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또 "이번 협상에서는 특히 한국인 근로자의 고용 안정에 최우선의 주안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합의를 통해 합리적이고 공평한 방위비 분담 수준을 만들어냈다. 이는 정부가 방위비 협정의 기본 틀을 지켜내고 객관적 근거와 논리 바탕으로 당당하게 협상한 결과"라고 자평했다. "특히 미 측이 급격한 분담금 인상을 위해 강하게 주장했던 준비태세 항목이 신설되지 않도록 했고, 단순히 금액이 아닌 원칙과 기준에 입각한 협상을 했다"고 말했다.
이로써 2020년 1월1일부터 약 1년 3개월 간 이어진 초유의 협정 공백 상태는 해소됐다. 특히 1년 넘게 공전을 거듭해온 협상을 바이든 행정부 출범 48일 만에 마무리지으며, 트럼프 행정부 시절 상처받은 한ㆍ미 동맹 회복을 위한 신호탄을 쐈다는 의미가 있다.
이번 협정의 골자는 ▶협정 기간은 2020년부터 2025년까지 유지되는 6년으로 하되 ▶협정 공백 상태로 이미 지나간 2020년 방위비는 2019년의 금액(1조 389억원)으로 동결하고 ▶2021년을 사실상의 협정 첫 해로 인정, 전년 대비 13.9% 인상한 1조 1833억원을 한국이 분담하며 ▶향후 전년도 국방비 증가율을 적용해 매해 한국이 내는 방위비 총액도 인상한다는 것이다.
한ㆍ미가 방위비 협상을 할 때마다 입장 차를 보이는 쟁점은 첫 해의 총액, 연간 인상률, 협정 기간, 제도 개선 등 네 개다. 이를 패키지를 묶어 주고받기를 통해 협상을 타결하는 게 통상적이다.

지난해 한국 '13%대 인상안'이 기준점 

총액 관련, 정부는 지난해 3월 ‘첫해 13.6% 인상’을 골자로 하는 제안을 해 한ㆍ미 실무선에서는 합의를 이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더 큰 증액을 원해 무산됐다. 이번에 합의한 첫해 인상률 13.9%는 정부의 마지막 제안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 수준이다. 6년이란 협정 기간은 다년 협정을 원하는 한국 측의 입장이 반영된 것이다.
문제는 연간 인상률이다. 기준이 되는 국방비 증가율 관련, 정부는 지난해 발표한 국방 중기계획에서 2021년부터 2025년까지 재원 300조 70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연 평균 증가율로 환산하면 매해 6.1%씩 오르는 셈이다.

 정은보 한미 방위비분담협상대사(왼쪽)가 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제11차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체결을 위한 회의를 하고 있다. 오른쪽은 도나 웰튼 미 국무부 방위비분담협상대표(정치군사국 선임보좌관). 뉴스1

정은보 한미 방위비분담협상대사(왼쪽)가 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제11차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체결을 위한 회의를 하고 있다. 오른쪽은 도나 웰튼 미 국무부 방위비분담협상대표(정치군사국 선임보좌관). 뉴스1

이를 방위비 협정 기간 동안 적용해보면 2020년(동결) 1조 389억원-2021년(13.9%↑) 1조 1833억원-2022년(2021년 국방비 증가율 5.4%↑) 1조 2471억원-2023년(예상 평균 증가율 6.1%↑) 1조 3232억원-2024년(6.1%↑) 1조 4039억원-2025년(6.1%↑) 1조 4896억원이다.
총액 대폭 인상에 집착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재임 중 방위비 협상(10차 SMA) 첫 회의가 열린 2018년 3월 당시 처음 요구한 금액은 1.5배 증액, 약 1조 4400억원이었다. 이번에 합의한 11차 협정에 따라 매해 국방비 예상 증가율을 적용하면, 협정 마지막해인 2025년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원했던 총액을 넘어서게 되는 셈이다.  
2019년 9월 시작된 11차 SMA 협상 때도 미국이 처음에는 50억 달러(약 6조 1000억원)로 5배 증액을 요구했지만, 막판에는 13억 달러(약 1조 5900억원)까지 액수를 낮췄다.

정은보 대표 "국방비 증가율, 신뢰할 만한 기준"

매해 6.1%씩 인상, 사실상 고정되나

또 10차 SMA 협상 당시 트럼프 협상팀이 요구한 연간 인상률은 ‘7% 고정’이었다. 9차 협정에서는 매해 전전년도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방위비를 인상하되 인상률이 4%는 넘지 못하도록 규정했는데, 트럼프 협상팀은 “9차 협정 기간(2014~2018년) 중 실제 미군 주둔 비용이 인상액을 넘어섰다”고 주장하며 이런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매해 7%씩 고정적으로 올리자고 요구했다. 하지만 한국 측은 이전 인상률 상한선의 두배 가까이 되는 7%는 너무 높다고 반대했고, 고정 상승률에도 부정적이었다.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추이.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추이.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런데 이번에 타결된 협정에선 연간 상승률을 숫자로 박아놓지는 않았지만, 기준으로 제시한 국방비 증가율은 이미 중기 국방계획으로 공식화한 상황이다. 평균 증가율이 급격하게 변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는 뜻이다. 이에 6.1%가 이번 협정 기간 내 사실상 고정 인상률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제껏 한국이 고정 인상률을 수용한 적은 없었다. 또 이번 협정은 연간 상승률을 제한하는 상한선도 두지 않았다.
결국 총액이나 연간 인상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원했던 바가 상당 부분 달성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는 셈이다. 떠난 트럼프 대통령이 결국 승자였고, 효과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누렸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오는 이유다. 김정섭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워낙 처음에 무지막지하게 나오던 차에 이 정도면 선방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지난해에 실무선에서 한ㆍ미가 합의한 게 있으니 미국에 새 정부가 들어왔다고 해서 인상률이나 총액을 낮추기도 힘들었을 것”이라며 “트럼프 효과로 바이든 행정부가 덕을 봤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9일 맨해튼 트럼프 타워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9일 맨해튼 트럼프 타워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박정은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트럼프 행정부가 무리한 요구를 했던 걸 고려하더라도 13.9%는 그야말로 역대급 대폭 인상이다. 심지어 다 쓰지 못한 지금까지의 이월액도 많다”며 “우리 국방 예산을 늘려 자립도를 높이면 방위비는 낮추는 것이 맞는데 이를 연동하는 것은 모순이고, 정부가 이를 바꾸려는 의지가 있는지도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주한미군의 보다 안정적 주둔이 중요하고, 이를 위해 우리 국력에 맞게 동맹을 위해 책임 있게 기여한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국방비 증가율은 국내의 예산 상황, 안보 상황 등에 있어 우리의 상황을 대변하는 지표"라며 "우리 국내 상황과 안보 상황이 연동되고, 따라서 보다 현실적인 방위비 분담금 체제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한다”고 말했다.
정은보 대표도 영상을 통해 "국방비 증가율은 우리의 재정능력과 국방력을 반영하고 국회 심의를 통해 확정되면 국민 누구나 확인 가능하다는 점에서 신뢰할만한 합리적인 기준"이라고 말했다.
유지혜ㆍ정진우ㆍ박현주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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