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냉장고 6시간 오작동…백신 1개가 아쉬운 판에 또 폐기 위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최근 전라북도 김제시의 한 병원에서 백신 냉장고가 고장나 보관하던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을 폐기할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철저한 백신 관리를 통해 낭비를 줄이기 위해 방역 당국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국내 백신 접종이 시작된 지난달 26일 오전 울산시 남구보건소에서 관계자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 준비를 하고 있다. 뉴스1

최근 전라북도 김제시의 한 병원에서 백신 냉장고가 고장나 보관하던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을 폐기할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철저한 백신 관리를 통해 낭비를 줄이기 위해 방역 당국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국내 백신 접종이 시작된 지난달 26일 오전 울산시 남구보건소에서 관계자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 준비를 하고 있다. 뉴스1

국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이 보름여 이어지는 가운데 전국 곳곳에서 백신 보관·유통을 잘못하는 바람에 백신이 폐기 위기에 처하는 일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자칫 백신에 문제가 생길 경우 접종자 안전을 위협할 수 있고, 지난해 독감 백신 사태 때처럼 백신에 대한 불신을 부를 수 있다. 가뜩이나 백신 물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폐기되는 백신이 늘어날 경우 접종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수도 있다. 방역 당국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전북 김제시의 한 민간 병원 백신 냉장고에 이상이 발생했다는 신고가 시 보건소에 접수됐다. 신고가 접수된 건 지난 6일 오전 9시쯤으로 해당 병원 백신 냉장고에는 280명에게 접종할 수 있는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 28바이알(병)이 있었다고 한다. 원래 9일부터 이틀간 접종할 예정이던 이 백신은 지난 5일 오전 11시 56분쯤 병원에 입고돼 냉장 보관하고 있었다.

병원은 백신 입고 후 21시간 뒤 냉장고에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인지해 보건소에 신고 했고 보건소는 즉각 조사에 나섰다. 조사 결과 해당 냉장고는 6시간 넘게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보건소는 해당 백신을 보건소 냉장고로 옮겼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국내 백신 접종이 시작된 지난달 26일 오전 울산시 남구보건소에서 울산지역 1호 접종자인 이동훈 길메리요양병원 부원장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뉴스1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국내 백신 접종이 시작된 지난달 26일 오전 울산시 남구보건소에서 울산지역 1호 접종자인 이동훈 길메리요양병원 부원장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뉴스1

양동교 코로나19예방접종대응추진단 자원관리반장은 9일 온라인으로 진행한 정례브리핑에서 “확인 결과 백신을 보관하는 냉장고와 냉장고의 온도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온도계가 고장 난 것이 원인으로 파악됐다”며 “즉시 사용 중단했고 전문가, 식약처와 함께 논의를 통해 폐기 여부 등을 결정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AZ 백신은 영상 2~8도에서 냉장 보관·유통해야 하고 미개봉한 상태라면 냉장해서 48개월간 보관할 수 있다. 단 개봉했을 경우 30도 이내에서 6시간만 보관이 가능하다. 김제시 보건소에 따르면 문제가 생긴 백신은 개봉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적정 보관 온도에서 벗어난 채로 몇 시간이 흘렀는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백신 유통이나 보관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건 처음이 아니다. 지난 4일 울산에서는 백신을 폐기하는 일도 있었다. 4일 울산시에 따르면 지난 1일 울산시 동구의 한 요양병원에서 보관하던 AZ 백신 100명분(10바이알)이 보관 온도를 넘어 폐기하기로 했다. 이 요양병원은 지난달 27일 해당 백신을 공급받아 자체접종을 진행할 계획이었다. 울산시는 냉장고와 연결된 멀티탭 고장으로 전원이 끊겨 백신 보관 온도를 넘겼다고 사고 이유를 밝혔다.

25일 새벽 전남 목포항 국제여객부두에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운송 트럭이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고속훼리 퀸제누비아호에 실려 제주도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25일 새벽 전남 목포항 국제여객부두에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운송 트럭이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고속훼리 퀸제누비아호에 실려 제주도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4일에는 제주도로 AZ 백신을 옮기는 과정에서 수송 용기 온도 조절 장치에 문제가 생겨 해당 백신 3900회분을 전량 회수하는 일도 있었다. 방역 당국 확인 결과 수송 차 안에 있는 수송 용기 온도가 한때 0.5도로 떨어졌다고 한다. 이후 방역 당국은 해당 백신이 적정 온도에서 장시간 벗어나지 않아 문제가 없다고 판단해 폐기하지 않고 사용하기로 했다.

백신 보관·유통에서 반복해서 문제가 발생하자 현장에서는 보완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진다. 경기도에 한 병원 원장은 “규모가 작은 의료기관은 1대당 1000만원 정도 하는 백신 냉장고를 따로 구매하기 어렵다”며 “일반 냉장고에 온도계를 부착하고 변화가 있으면 관리자에게 자동으로 전화하도록 하는 시스템은 이미 있는데 이런 시스템을 빠르게 갖출 수 있도록 정부가 확인하고 교육을 통해 시스템에 숙달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백신 1개가 아쉬운 상황에서 100개씩 폐기하면 곤란하다”고 말했다.

요양병원협회 관계자는 “정부에서 온도계 구매 비용은 지원해주지만, 냉장고 관리는 사람이 할 수밖에 없다”며 “백신 접종 후 몸살 기운 등으로 결근하는 인원도 발생하고 접종 관련 업무 자체도 늘어난 만큼 접종 수가 지원 등을 통해 관리 인력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윤 서울대의대 의료관리학 교수는 “결국 냉장고 설비 관련 문제는 장비에 투자해야 해결할 수 있다”며 “개별 의료기관에서 관리하기 어려운 점이 무엇인지 찾아 보완하고 이러한 사고로 국민 불안이 커질 수 있으니 방역 당국은 정보 공개를 투명하게 해 백신 접종에 믿음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태윤 기자 lee.taeyu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