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전금법’ 개정안 놓고 “정보 과다집중” vs “소비자 보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2면

빅브라더법(국가의 비합법적인 감시체계)일까, 소비자 보호를 위한 안전장치일까.

전자지급거래 청산업 신설 #빅테크 결제내역 외부 관리 등 #국회 정무위 공청회 찬반 공방

한국은행과 금융위원회가 갈등을 벌이는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전금법)을 둘러싼 대리전이 25일 국회에서 벌어졌다. 국회 정무위원회가 연 전금법 개정안 공청회에서다. 전금법 개정안에는 전자지급거래 청산업을 신설하고, 네이버페이나 카카오페이 등 빅테크 기업 내부의 각종 결제 내역도 외부 기관인 금융결제원에서 관리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전자지급거래 청산은 자금이체 과정에서 채권·채무 관계를 서로 상쇄해 거래를 간소화하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네이버페이 이용자가 네이버 쇼핑에서 결제한 내역을 네이버 내에서만 갖고 있지 않고, 금융결제원으로 보내 관리하겠다는 취지다. 금융결제원에 대한 관리·감독 권한은 금융위가 갖게 된다.

외부청산이 필요하다는 측에서 내세우는 명분은 소비자 보호다. 지난해 3분기에 빅테크 기업의 내부거래는 하루 평균 920만건 발생했다. 이 때문에 내부거래에 대한 적절한 통제 장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지난해 독일의 핀테크 업체인 와이어카드가 2조5600억원 규모의 분식회계를 저지른 사실이 밝혀져 파산했는데, 이런 일이 한국의 빅테크나 핀테크 기업에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중호 하나금융연구소장은 “빅테크 내부에서 가공거래와 자금세탁, 분식회계 등을 통한 금융사기 및 조작 등이 일어날 경우 사전 탐지와 예방이 어렵다”며 “빅테크의 내부거래를 공신력 있는 청산기관이 처리해 거래 투명성을 높이고 빅테크의 자금유용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차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양기진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내부거래마저 청산의무를 부과하는 전례는 없고 글로벌 스탠다드에도 반한다”고 지적했다.

금융결제원에 빅테크의 내부거래 정보가 모일 경우 ‘빅브라더’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양 교수는 “개인의 자기정보결정권을 침해하고 국가기관에 의한 과도한 개인정보 수집 이슈를 야기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금융결제원에 전송되는 정보를 시행령에 위임했는데, 어떤 정보가 담길지 등이 정해져 있지 않아 정보의 과다한 집중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국무총리실 산하 개인정보보호위원회도 같은 이유로 전금법 개정안이 헌법에 위배될 우려가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개보위는 “제공되는 정보의 구체적인 내용을 법률인 개정안에 담지 않고 모두 대통령령에 위임하고 있다”며 “정보의 범위가 명확하지 않아 개인의 내밀한 사생활에 관한 민감한 정보까지 포함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모인 정보의 악용을 방지하는 데 초점을 두고 금융당국이 언제, 어디까지 정보를 볼 것인지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청산 시스템이 구축되기 전이라 이후 시행령을 통해 정하려고 했던 것”이라며 “개보위 등의 지적을 반영해 시행령이 아닌 법안에 지급인 계좌번호와 수취인 계좌번호, 금액 등 제공정보를 명확히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무위 의원들의 의견도 갈렸다.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은 “지급거래 과정을 외부기관에 맡기는 이유는 소비자 보호 때문”이라고 했고, 홍성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금융위가 개인정보 관련 부분만 보완해서 (전금법 개정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권은희 국민의당 의원은 “빅테크에 대한 영업활동의 자유와 영업기밀의 자유를 침해하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용우 민주당 의원도 “네이버 등은 거래 규모가 큰 만큼 금융결제원 망에 결합했을 때 시스템이 안정화될지 의문이 든다”고 반대했다.

안효성 기자 hyoza@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