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택트 시대에…주총, 온라인으로만 하면 불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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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현대차는 올해 정기 주총을 온라인 생중계할 예정이다. 사진은 작년 3월 주총 모습. [사진 현대차]

현대차는 올해 정기 주총을 온라인 생중계할 예정이다. 사진은 작년 3월 주총 모습. [사진 현대차]

온·오프라인을 병행해 주주총회를 여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동학 개미를 비롯한 소액 투자자의 주총 참여를 독려하고 더욱 편리하게 회사의 의사 결정 과정을 지켜보게 하자는 취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차원에서도 온·오프라인 주총을 함께 여는 기업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현대차·삼성 등 온·오프 병행 확산 #안건, 실시간 온라인 투표는 불가

22일 재계에 따르면 현대자동차는 올해 주총을 온라인으로도 중계한다. 현대차 관계자는 “사전 등록한 주주를 대상으로 인터넷에서 시청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도 다음 달 17일 열리는 주총을 사상 처음으로 온라인 생중계한다. 주주들은 주총 전 과정을 실시간으로 시청하고 질문도 할 수 있다. 앞서 삼성전자, 삼성물산, 삼성전기, 삼성SDI 등 삼성 계열사들은 삼성준법감시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올해 주총을 온·오프라인 병행 개최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다만 온라인 시청을 하면서 주총 안건을 온라인으로 투표하는 것은 현행법상 불가능하다. 사전에 전자투표에 참여하거나 의결권 대리행사를 신청해야 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전자투표제를 도입했다. SK그룹에선 SK텔레콤이 지난해부터 온·오프라인 주총을 병행 실시했다. SK하이닉스도 올해 주총을 온라인 중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앞서 경제개혁연대는 지난해 12월 국내 주요 상장사 9곳에 코로나19를 고려해 온라인으로도 주총을 열어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당시 삼성전자와 현대차는 개최 의사를 밝혔고, SK하이닉스와 네이버 등도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선 테슬라가 주총을 사실상 온라인으로 개최했다. 지난해 9월 캘리포니아 주 프리몬트 공장에서 주총을 개최한 테슬라는 추첨으로 선발된 주주 240명만 현장에 불렀다. 소액 주주 대다수는 유튜브 생중계를 통해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로부터 회사 현황을 청취했다. 머스크는 주총 직후 테슬라의 배터리 기술을 소개하는 ‘배터리 데이’를 곧바로 진행하며 전 세계 전기차 이용자의 이목을 끌었다.

하지만 국내 기업의 경우 테슬라처럼 온라인 주총만을 여는 건 불가능하다. 현행 상법에서 이사회는 원격 개최를 허용하지만, 주총은 특정 장소에 열도록 규정해놨기 때문이다. 상법에 따르면 주총 장소도 본점 소재지 또는 이에 인접한 곳에서 소집하게 돼 있다. 정지수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원은 “미국에선 2000년대 초부터 각주 별로 전자 투표뿐 아니라 전자 주총이 허용됐고, 이를 전문으로 하는 플랫폼 기업이 생겨났다”며 “주총에 유연성을 허용하는 것이 전 세계적인 추세”라고 설명했다.

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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