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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원전' 참고자료에도 경수로 재개, 신규 원전, 송전 담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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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경북 경주 양남면 월성원자력발전소 모습. 연합뉴스

지난 18일 경북 경주 양남면 월성원자력발전소 모습. 연합뉴스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이 2019년 12월 감사원 감사 직전 삭제한 '북한지역 원전건설 추진방안(북원추)' 문건에는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경수로 부지였던 함경남도 신포에 원전 건설을 재개하는 방안이 담겼다. 이외 ▶비무장지대(DMZ)에 원전을 짓는 방안 ▶신한울 3·4호기 생산 전력을 송전하는 방안 등을 포함 3가지 시나리오가 북원추 문건의 골자였다.

산업부 '북원추' 문건은 이런 KEDO 경수로 사업 재개와 신규 원전 건설 등 아이디어를 2009년 6월 한 공공기관 연구원이 작성한 연구 보고서에서 참고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참고자료'에도 "KEDO 사업 재개 또는 북한 신규 원전 건설"

1일 중앙일보가 입수한 산업부 공무원 3명의 공소장 범죄일람표에 따르면 북한과 원전 및 전력협력 문건 17건이 발견된 '60 pohjois(뽀요이스: 핀란드어 북쪽)' 폴더 내부 하위 폴더 '참고자료'엔 「북한 전력 인프라 구축을 위한 단계적 협력 과제」「북한 전력산업 현황 및 독일 통합사례」라는 제목의 두 개의 연구보고서가 있었다. 두 건 모두 A 전 한국전기연구원 책임연구원이 작성한 자료다.

2009년 5월 북한의 2차 핵실험 이후 작성된 「북한 전력 인프라 구축 협력과제」 보고서는 "'위기는 기회'라는 말과 같이 현재의 남북한 경색 국면을 타개하는 중요 요소로서 획기적인 대(對) 북한 전력 협력 중대제안도 생각할 수 있다"며 "대북한 전력 인프라 구축을 남북간 정치적 합의 전제하에서 상생 공영의 통일 정책과 상통하는 에너지 협력 정책으로 승화시켜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보고서는 특히 남북한 에너지·전력 협력 공동기구 설립 등 단계적 협력 방안 가운데 중장기 과제로 북한 지역 원전 건설 방안을 제시했다. 보고서는 "6자회담에서의 정치적 합의를 전제로 만약 북한 원전 건설이 재개된다면 ① KEDO 경수로 사업 재개 혹은 ② 신규 원전 건설을 대안으로 들 수 있다"며 "①안은 KEDO 경수로 사업 중간 결과물 활용을 통해 기투입한 비용 회수를 극대화하는 것이 가능하며, KEDO 경수로 사업 관련 각종 협정서 및 의정서를 준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반면에 ②안은 최신 기술 기준을 채택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고 설명했다.

2005년 당시 대북 200만㎾ 송전 제안을 토대로 중기 과제로 대북 송전망 건설 및 전력 공급 방안(투자비 1~2조)도 제시했다.

2018년 산업통상자원부 원전 문건작성 시점 전후 남북관계 일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2018년 산업통상자원부 원전 문건작성 시점 전후 남북관계 일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북원추' 문건의 3개 시나리오 중 ① KEDO 경수로 사업 재개와 ② DMZ 신규 원전 건설 ③ 대북 송전과 유사한 방안이 9년 전 연구보고서에 담긴 셈이다.

KEDO는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 이행을 위해 1995년 발족한 한국과 미국, 일본, 유럽연합 등 국제컨소시엄으로 북한 신포에 경수로 원전 2기 건설을 진행했다. 2006년 10월 북한의 1차 핵실험으로 사업을 모두 중단했다.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 선언을 한 국민의힘 나경원 전 의원이 1월 31일 청와대 앞에서 탈원전 반대 시민단체 대표들과 기자회견을 열고 " 문재인 정부는 대북 원전 상납 의혹 등에 대한 진실을 밝히라"고 주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 선언을 한 국민의힘 나경원 전 의원이 1월 31일 청와대 앞에서 탈원전 반대 시민단체 대표들과 기자회견을 열고 " 문재인 정부는 대북 원전 상납 의혹 등에 대한 진실을 밝히라"고 주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개발연구원(KDI) 북한경제리뷰 2016년 5월호에 실린 「북한 전력산업 현황 및 독일 통합사례」 보고서는 "통일비용의 절감 차원에서는 인프라 산업, 그중 핵심인 북한의 전력산업에 대한 검토가 필수적"이라며 "독일의 경우 전력 및 인프라 분야 협력 미진해 통일 이후 많은 혼선이 있어 남북이 반면교사를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작성자 "'북원추' 문건과는 무관, 작성 시점도 훨씬 과거"

보고서를 작성한 A 전 연구원은 이날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자신의 아이디어가 '북원추' 문건에 인용된 것과 관련해 "전혀 무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A 전 연구원은 "북핵 문제가 완전히 제거되고 정치적 합의를 전제로 생각해볼 수 있는 시나리오 중 하나라는 것이지 그것을 실행하겠다는 것은 아니다"라며 "내 보고서는 산업부의 요청에 따른 것도 아니었고 '북원추' 문건 작성 시점(2018년 5월경)보다 훨씬 전에 작성된 것"이라고 말했다.

2018년 5월 산업부 측의 자료 요청이 있었냐는 데에는 "20년 넘게 북한 관련 연구를 했기에 정부·기업, 공공기관 등에서 많은 질문을 받아왔기 때문에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신희동 산업통상자원부 대변인이 31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에서 "북한 원전 건설 추진 방안 문건은 남북 경제협력이 활성화될 경우에 대비해 단순하게 아이디어 차원에서 검토한 내부자료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뉴스1

신희동 산업통상자원부 대변인이 31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에서 "북한 원전 건설 추진 방안 문건은 남북 경제협력이 활성화될 경우에 대비해 단순하게 아이디어 차원에서 검토한 내부자료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뉴스1

신희동 산업부 대변인은 전날 브리핑에서 "2018년 4월 27일 제1차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한 이후 향후 남북 경협이 활성화할 경우를 대비해 산업부 각 부서별로 다양한 실무 정책 아이디어를 검토한바 있고, 북한 원전 문서도 에너지 분야 협력 아이디어 차원에서 검토한 산업부 내부 자료"라며 "추가 검토나 외부 공개 없이 그대로 종결됐고, 따라서 정부 정책으로 추진된 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강광우 기자 kang.kwang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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