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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 앞 날아든 문화재청 공문···부평 미쓰비시 줄사택 ‘딜레마’

중앙일보

입력

미쓰비시 줄사택은 1938년 일본 군수공장에 강제 징용된 노동자들이 살던 합숙소다. 건물이 줄지어 붙어있어 줄사택이라 불렸다. 사진 부평구청

미쓰비시 줄사택은 1938년 일본 군수공장에 강제 징용된 노동자들이 살던 합숙소다. 건물이 줄지어 붙어있어 줄사택이라 불렸다. 사진 부평구청

인천시 부평구 부평동. 다음 달 준공을 앞둔 부평2동 행정복지센터 인근엔 다닥다닥 붙어 있는 낡은 집 수십여 채가 있다. 상당수는 외벽 칠이 벗겨져 있고 창이 깨졌다. 건물 파편과 낙엽이 뒤엉킨 골목 끝에는 자물쇠가 채워진 화장실이 있다. 강제노역 역사를 연구하는 김현회(59)씨는 이곳을 “과거 징용 노동자들이 사용하던 화장실”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철거가 진행 중인 이곳은 미쓰비시(三菱) 줄사택이다. 1938년 히로나카상공(弘中商工)이 노동자 숙소로 만들었고, 1942년 미쓰비시 제강이 인수했다. 집이 줄지어 있다고 해서 줄사택이라 불렸다. 당시 조선인 근로자 1000여명이 줄사택에서 생활했다. 광복 후엔 일반인이 살았다. 한때 16개 동이 있었던 줄사택은 하나씩 철거돼 현재는 6개 동만 남았다. 1동은 집 10여채로 이뤄진다.

미쓰비시 줄사택. 사진 부평구청

미쓰비시 줄사택. 사진 부평구청

 줄사택 인근 주민은 흉물이라며 철거를 요구하지만, 학계에선 일제 강제노역의 흔적을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018년 부평구는 ‘미쓰비시 줄사택 생활사 박물관’ 사업을 추진했으나 주민 반대로 무산됐다. 결국 구는 주민 의견을 수렴해 2019년 시비와 구비를 합쳐 40억원을 투입해 줄사택 일부 부지를 확보했다. 4개 동을 철거하고 주차장을 짓기로 했다. 공사 현장에서 나온 기와와 목제 기둥, 벽체 등 건축재는 보존해 부평역사박물관에 전시하기로 하면서 논란은 일단락되는 듯했다.

철거 앞두고 날아든 공문에 난감

지난 2019년 일본 대사관 직원들이 미쓰비시 줄사택을 찾아 현장을 둘러봤다. 사진 부평구청

지난 2019년 일본 대사관 직원들이 미쓰비시 줄사택을 찾아 현장을 둘러봤다. 사진 부평구청

그러다 상황이 달라졌다. 지난해 10월 문화재청이 인천시와 부평구에 문화재청에 협조 공문을 보내면서다. 문화재청은 “미쓰비시 줄사택은 일제강점기 강제징용된 노동자의 실상을 보여주는 근대 문화유산”이라며 “시민단체의 지속적인 보존 요청이 있었다. 문화재 등록 등을 검토해 역사적 장소로 후대에 전해질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 했다.

미쓰비시 줄사택을 보존해 추후 등록문화재가 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달라는 것이다. 문화재청은 50년 이상 된 근대문화유산 중 보존 및 활용 가치가 큰 건물을 등록문화재로 정할 수 있다. 등록문화재는 신고를 거쳐 지도·조언·권고 등 완화된 보호조치를 하고, 소유자의 자발적인 보호 노력을 끌어내는 점이 지정문화재와 다르다. 외관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 선에서 내부 수리도 허용된다.

 공문을 받은 지 3개월. 부평구는 장고에 들어간 상태다. 권고사항이지만 문화재청의 공문을 무시하기가 부담스러운 데다 사업을 원점으로 돌리면 주차장 조성이나 줄사택 보존과 관련해 추가 비용이 들 수 있어서다. 구는 줄사택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다음 달 초 전문가·주민·구의원 등이 참여하는 민관협의체를 만들기로 했다. 부평구 관계자는 “주민 의견을 듣고 관련 부서에서 논의 후 미쓰비시 줄사택 존치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심석용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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