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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화이자·모더나 2억회 추가 구매" 백신대란에도 쓸어담는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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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백악관 스테이트 다이닝 룸에서 코로나19 관련 대응책을 발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백악관 스테이트 다이닝 룸에서 코로나19 관련 대응책을 발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신종 코로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의 초기 공급 물량 부족 현상이 뚜렷해지자 추가 확보를 위한 각국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독일은 EU에 "유럽 생산 백신 수출 제한해야" #WHO "전세계가 파국적인 도덕적 실패 직면"

선진국들이 백신 물량을 쓸어담는 '패닉 바잉' 현상은 물론 유럽에선 자국 내에서 생산된 백신의 수출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특히 이같은 확보 경쟁은 이미 주요국에서 사용 승인 절차를 통과한 뒤 접종을 시작한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에 집중되고 있다. 후발 백신의 승인이 늦어지고 있는데다 당초 약속했던 물량도 공급하기 쉽지 않은 여건이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코로나19 후속 대응책을 발표하며 “화이자와 모더나를 각각 1억회씩 2억회 추가 주문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늦여름, 초가을까지 미국 인구 3억명(총 인구 약 3억 2000만명)이 백신을 맞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건 전시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로써 미국이 확보한 백신 분량은 4억회분에서 6억회분으로 50% 늘어났다. 또 향후 3주 동안 각주의 백신 공급을 16% 늘려 매주 1000만회 분량을 접종하고, 100일 안에 1억명을 접종한다는 목표도 세웠다.

유럽에선 독일이 백신의 수출을 제한할 것을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 측에 제안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29일 EU의 새로운 수출규제 정책 발표를 앞두고, 독일 정부는 미국 화이자·독일 바이오엔테크의 백신과 영국 옥스퍼드대·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유럽 생산 물량을 외부로 수출하는 것을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FT는 자국 내 백신 생산 시설을 두고 있는 독일이 가장 강력한 백신 수출 통제 지지자가 됐다고 지적했다.

영국 옥스퍼드대와 다국적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의 합작백신. [연합뉴스]

영국 옥스퍼드대와 다국적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의 합작백신. [연합뉴스]

이에 대해 옌스 슈판 독일 보건부 장관은 26일(현지시간) 독일 ZDF 방송에서 “이건 '유럽 퍼스트(우선주의)'가 아니다”며 “공정한 배분에 관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영·미에 비해 백신 접종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린 EU 국가들은 국내에서 정치적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선진국들 백신 선점에 ‘백신 민족주의(Vaccinationalism)’란 신조어가 등장할 만큼 국가간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의 백신 접종 현황에 따르면 27일(현지시간) 기준 전세계적으로 7130만회의 백신이 투여됐고, 이중 미국에서 2450만회가 풀렸다.

인구 수 대비 접종률은 이스라엘이 인구 100명 당 44.5명으로 1위였다. 이어 아랍에미레이트(UAE) 24.9명, 영국 10.9명, 미국은 7.5명 순이었다. 반면 아프리카 대륙에선 아직 한 회분도 접종을 시작하지 못 한 나라가 대부분이다. 전세계적으로 확진자는 1억 명을 돌파했고 사망자는 약 215만명에 이르고 있다.

선진국들이 앞다퉈 백신 확보 경쟁을 벌이는 건 일차적으로 바이러스 확산세가 백신의 제조·유통 속도를 넘어서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영국ㆍ브라질 등에서 변이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는 것도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백신을 빨리 보급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옌스 슈판 독일 보건부 장관은 25일(현지시간) ″유럽 내에서 생산된 백신을 외부로 수출하는 것을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22일(현지시간) 수도 베를린의 코로나 봉쇄 정책과 관련해 연방 기자회견을 여는 모습. 독일은 팬데믹 이후 5만여명이 코로나로 사망했다. [EPA=연합뉴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옌스 슈판 독일 보건부 장관은 25일(현지시간) ″유럽 내에서 생산된 백신을 외부로 수출하는 것을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22일(현지시간) 수도 베를린의 코로나 봉쇄 정책과 관련해 연방 기자회견을 여는 모습. 독일은 팬데믹 이후 5만여명이 코로나로 사망했다. [EPA=연합뉴스]

전세계 주문량이 가장 많은 아스트라제네카는 22일(현지시간) 구매자들에게 “주문한 백신 물량이 예상보다 적을 수 있다”며 “유럽 공급망 내 제조 현장의 생산량 감소로 초기 수량이 예상보다 적어지게 됐다”고 공지했다.

이는 전날 세계 최대 백신 제조 업체인 세룸 인스티튜트의 인도 생산라인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한 이후 나왔다. 이번 화재로 유럽의 상반기 공급 물량이 60% 줄어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선진국들의 자국 우선주의는 결국 부메랑이 돼 돌아올 것이라는 경고도 나온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지난 18일(현지시간) WHO 이사회 연설에서 “일부 국가와 제조사들의 ‘나부터(me-first) 접근법’에 전세계가 파국적인 도덕적 실패 직전에 있다”며 “실패의 대가는 세계 최빈국 국민의 생계로 지불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토니오 쿠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자멸적인 백신 민족주의가 글로벌 회복을 지연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스라엘 하이파에서 지난 11일(현지시간) 화이자 백신 접종이 이뤄지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스라엘 하이파에서 지난 11일(현지시간) 화이자 백신 접종이 이뤄지고 있다. [AFP=연합뉴스]

국제상공회의소(ICC)는 백신의 불평등한 배포로 세계 경제는 9조 달러(약 9900조원)의 손실을 입고, 이중 절반을 선진국이 부담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존 덴튼 ICC 사무총장은 25일(현지시간) 프랑스24와의 인터뷰에서 “백신의 평등한 보급은 자선 행위가 아니라 경제적인 상식”이라고 말했다. 선진국들이 자국 국민들에 백신을 모두 맞혀도, 초연결 사회에서 가난한 나라들의 전염병이 잡히지 않으면 결국 다시 팬데믹이 확산하는 사태로 이어질 것이란 지적이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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