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계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과거 공익신고자를 보호하고 국회의원과 정당을 통한 공익신고를 활성화하는 법안을 여러 차례 발의했던 것으로 26일 나타났다. 박 후보자는 전날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출금) 의혹 관련 공익신고자에 대한 여권의 전방위 공세에 “소위 공익제보 여부, 수사자료 유출 문제를 살펴보겠다”며 가세했지만, 이는 과거 입장을 바꾼 셈이다. 현행 부패방지법 및 공익신고자보호법 취지와 정면 위배되는 것이기도 하다.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一口二言'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전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박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김학의 전 차관 사건 공익신고자를 겨냥해 “공익제보라는 이름으로 야당이 받아서 야당발로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그 내용을 보면 기본적으로 수사자료가 아니면 알 수 없는 내용이 대부분”이라며 “수사자료가 유출됐다고 의심되는 사안이라서 이에 대해 엄정한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야당을 통한 공익제보를 ‘수사자료 유출’로 규정, 이를 문제 삼으며 법적 대응을 예고하거나 관련 수사를 촉구한 것이다.
김 전 차관 불법 출금 의혹의 핵심 당사자인 차규근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이 같은 날 오전 KBS라디오에 출연해 “민감한 수사기록들을 통째로 특정 정당(국민의힘)에 넘기고 하는 것들은 형법상 공무상 기밀유출죄에 해당한다. 이 부분에 대해 고발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것과 같은 입장이다.
박 후보자는 김 의원 질의에 “소위 공익제보 여부의 문제, 또 수사자료 유출의 문제, 김 전 차관 출국(시도)에 대한 배후세력까지 포함해서 장관으로 일할 수 있게 된다면 살펴보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박 후보자는 과거 공익신고 활성화를 위해 국회의원이나 정당도 공익신고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박 후보자는 19대 국회 때인 2013년 4월 17일 공익신고 대상이 되는 ‘공익침해행위’에 기존 ‘국민의 건강과 안전, 환경, 소비자의 이익 및 공정한 경쟁 침해’ 외에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침해’를 덧붙이고, 공익신고를 받을 수 있는 자로 ‘국회의원 및 그 소속 정당’을 추가하는 내용의 공익신고자보호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박 후보자는 당시 국가정보원의 2012년 대선 개입 댓글 사건이 불거진 뒤 제보자에 대한 보호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며 “민의를 대표하는 국회의원과 정당을 통해 공익신고가 더욱 활성화되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법안 발의 배경을 설명했다. 다만, 이 같은 내용은 2015년 4월 국회를 통과한 공익신고자보호법 개정안에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다.
박 후보자는 더불어민주당이 여당이 된 2017년 6월 9일에도 같은 내용의 공익신고자보호법을 대표 발의했다.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공무원들이 블랙리스트 작성 등 부당한 지시를 받았음에도 내부고발자에 대한 보복성 조치가 두려워 이를 미리 밝히지 못했다는 문제 제기가 있었다”는 게 법안 제안의 이유였다. 이 법안 발의엔 현재 민주당 소속 윤호중 법사위원장과 백혜련 법사위 간사도 공동발의자로 참여했다.
박 후보자는 같은 당 소병훈 의원이 2017년 6월 27일 대표 발의한 공익신고자보호법 개정안의 공동발의자에도 이름을 올렸다. ▶공익침해행위 범주에 대한 세부규정을 삭제해 포괄적으로 명시토록 하고 ▶익명으로 공익신고가 이뤄진 경우에도 공익신고자가 법에 따른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며 ▶공익신고자임을 미루어 알 수 있는 사실을 공개 또는 보도한 걸 국민권익위원회가 인지한 경우 수사기관에 고발토록 하는 게 이 법안의 골자였다.
‘공직자가 자기 직무와 관련하여 공익신고를 했을 경우 보상금을 감액하거나 지급하지 않을 수 있다’는 26조 2항의 단서조항을 삭제하는 내용도 담겼다. 당시 박 후보자 등은 “공익신고자가 피신고자로부터 불이익 조치를 당하거나 경제적, 정신적 피해를 보더라도 이를 예방하기 어려워 공익신고를 위축시키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며 법안 개정 필요성을 주장했지만, 같은 해 10월 개정된 공익신고자보호법에는 이런 내용이 담기지 못했다.
한편, 권익위는 이날 김 전 차관 불법 출금 의혹 사건의 공익신고자가 신고자 보호를 신청했다고 밝혔다. 앞서 차규근 본부장은 전날 인터뷰에서 공익신고자를 “수사관련자”로 특정해 공익신고자보호법 위반 논란이 일었다. 현행법에 따르면 신고자의 동의 없이 공익신고자임을 미루어 알 수 있는 사실을 공개 또는 보도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