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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지원금으로 과태료 내겠다는 유흥업소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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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최경호 기자 중앙일보 광주총국장
최경호 내셔널팀장

최경호 내셔널팀장

지난 18일 오후 7시 인천시 미추홀구. 식당과 유흥업소가 밀집한 상가 내 불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 이날부터 영업이 재개된 노래방들이 6주 만에 가게 문을 연 순간이다.

이때 방역당국이 가슴을 쓸어내리는 상황이 벌어졌다. 아직 영업중단 조치가 풀리지 않은 유흥업소 간판까지 일제히 불이 들어와서다. 유흥업소 업주들이 영업제한 연장에 반발해 이른바 ‘점등시위’에 나선 현장이었다.

유흥업소들은 이날 식당과 노래방 영업이 끝난 오후 9시를 전후해 간판불을 모두 껐다. 일단 점등시위로 자신들의 처지는 알렸지만 영업제한에 따른 앙금은 가시지 않는 표정이었다. 앞서 이들은 이날 인천시청을 찾아가 “유흥시설 집합금지를 풀어달라”고 했다.

같은 날 오후 8시. 유흥주점들이 밀집한 광주 첨단지구 상가에 대낮처럼 불이 밝혀졌다. 정부의 집합금지 명령(영업 중단)이 내려진 룸살롱·단란주점 같은 유흥업소들이 일제히 간판불을 켜놔서다. 앞서 이들은 이날 이용섭 광주시장과의 면담에서 “굶어 죽게 생겼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과태료를 물더라도 오늘 밤부터는 영업하겠다”는 엄포도 놨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이 과태료로 내겠다고 한 돈은 정부의 재난지원금이다. “재난지원금을 단속에 적발된 업주에게 모아서 내주더라도 영업을 하겠다”는 일종의 고육지책이었다.

유흥업소 업주들이 20일 집합금지 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뉴스1]

유흥업소 업주들이 20일 집합금지 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뉴스1]

유흥업소들이 영업을 강행한다는 소식에 방역당국은 비상이 걸렸다. 광주 지역 유흥주점·콜라텍·단란주점·감성주점·헌팅포차 등 5개 업종의 1000여 업소들을 단속해야 할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광주시는 황급히 재난 문자를 보내 ‘유흥주점은 집합금지 업종’이라고 알렸다. ‘영업장에서 취식하면 과태료 처분을 받는다’고도 했다.

결국 이날 ‘영업 시위’는 광주시의 설득 끝에 무산됐지만 방역당국의 속내는 착잡하다. 코로나19로 인한 업소들의 어려움을 외면할 수도, 당장 영업제한을 풀어줄 수도 없는 입장이다. 더구나 유흥업계는 “전국적으로 영업을 재개하겠다”며 오는 22일 정부 세종청사 앞에서 전국 규모의 시위를 예고한 상태다.

이를 두고 방역당국과 전문가들은 “유흥업계가 결코 간과해선 안 될 게 있다”고 지적한다. 어설프게 영업 중단 조처를 풀어줬다가 자칫 확진자가 나올 경우 가장 큰 타격을 보는 곳은 유흥업소라는 점이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릴수록 가장 강력한 영업제한 조치가 떨어지는 업종 또한 유흥업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또한 방역지침을 손질해야 할 때다. 유흥업소는 물론이고 PC방이나 카페·체육시설 등 전 업종에서 형평성을 둘러싼 불만이 최고조에 달한 상태다. “똑같은 노래방 기계인데 ‘유흥’자 붙은 곳에서만 못 켜게 하는 방역대책”이라는 비아냥을 언제까지 들을 것인가?

최경호 내셔널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