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북 특목고·자립고 칼자루 쥔 교육감이 "NO"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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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북에 특수목적고교를 더 짓도록 서울시와 협의하겠다."(김진표 경제부총리)

"내년까지 서울 수도여고 자리에 외국인 학교를 세운다."(서울시.산업자원부)

"자립형 사립고를 우리 지역에 유치한다."(서울 강북구)

최근 정부나 지자체가 이처럼 교육대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가파르게 치솟은 강남 부동산 값을 잡거나 열악한 지역여건을 개선하기 위해서다. 경제부총리.서울시장 등이 발표한 대책이어서 얼핏 보면 실현 가능성이 커보인다.

과연 이들 학교를 세울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해 앞으로 상당 기간 힘들 전망이다. 유인종(劉仁鍾)서울시교육감이 한사코 반대하기 때문이다.

교육감은 차관급이다. 하지만 교육감이 반대하면 서열상 위인 부총리.시장이 어찌할 도리가 없다. 현행 지방교육자치법에 따르면 학교 설립 등 교육과 학예에 관한 사무는 교육감의 권한에 속한다. 교육감이 버티면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간다.

◇왜 반대하나=劉교육감은 9일 "외국어고.과학고와 같은 특목고는 임기 내(내년 7월까지)에 증설하고 싶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또 "현재 특목고도 강북지역에 있는데 왜 짓느냐"며 "서울시.재경부 등이 한번도 학교 설립 방안에 대해 협의해 온 적도 없다"고 덧붙였다.

劉교육감은 평소 "입시 과열 상황에서 특목고나 자립형 사립고를 만들면 결국 입시기관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 말해왔다.

게다가 산업자원부와 서울시가 지난달 서울 용산구 갈월동 수도여고 부지에 외국인학교를 짓기로 합의하고 각국 대사관, 외국계 회사 등을 상대로 설명회까지 개최했으나 이것 역시 실현이 어려울 전망이다.

이 땅의 소유권을 갖고 있는 시교육청이 이 자리에 초.중.고교 학생과 교사들의 영어연수를 위한 '영어 전용 마을(English Only Town)'을 만드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문제인가=시.도교육감은 학교 설립.지정.추천 권한을 모두 거머쥐고 있다. 서울시장도 교육과 관련해서는 교육감과 협의할 뿐 어떤 결정도 내릴 수 없다. 일반자치(시.도지사 관할)와 교육자치(시.도교육감 관할)가 분리돼 있기 때문이다.

2001년에도 부총리 부서로 승격한 교육인적자원부가 劉교육감에게 서울지역 내 자립형 사립고로 전환하기를 희망하는 고교를 추천해 달라고 요구했으나 劉교육감이 거부했다.

결국 정부가 공교육의 질을 높이고 학부모의 학교 선택권을 넓혀주기 위해 다양한 학교를 설립하려면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 일반자치와 교육자치를 통합하거나, 특목고 등의 설립 의지가 있는 새 교육감을 선출하는 것이다. 현 정부는 일반.교육자치 통합 논의를 2005년에 시작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돈희 전 교육부 장관(민족사관고 교장)은 "획일적인 교육체제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교육감이 걸림돌이 된다는 것은 큰 문제"라며 "평준화체제의 보완 차원에서 학부모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특목고 등의 설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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