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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내내 10시간 넘게 야근뒤 사망…대법 “업무상 재해”

중앙일보

입력

장시간 강도 높은 근무와 불규칙한 야근 중 사망했다면 정부가 고시한 초과 근무 시간보다 덜 일 했더라도 산업재해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정부 고시, 과로 판단 절대적 기준 아냐” #“초기 감염 뒤에도 제대로 쉬지 못해 사망”

대법원 1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지난해 12월 대우조선해양에서 근무하다 ‘급성 심근염’ 진단을 받고 사망한 A씨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12일 밝혔다.

업무상 과로 이미지 [pixabay]

업무상 과로 이미지 [pixabay]

A씨는 2009년 4월 경력직으로 대우조선해양에 입사해 용접 등 업무를 수행했다. 주 평균 4일에 주간 8시간(오전 8시~오후 5시), 야간 7시간(오후 8시~오전 5시) 동안 일해왔지만, 숨지기 전 12주간은 매주 10∼40시간씩 야간 근무를 했고 근무일정도 불규칙했다. 주 최대 56시간을 일했는데 그중 야간 근무가 40시간을 차지하기도 했다.

A씨는 2016년 10월 31일부터 몸살과 미열, 장염 증상을 보였다. 그런데도 11월 1일부터 3일 연속 10시간씩 야간 근무를 했다. 다음날인 4일 갑자기 통증을 느껴 병원 응급실을 찾은 A씨는 급성심근염 진단을 받았고 결국 14일 사망했다. 2013년 ‘출혈 있는 급성 위궤양’을 겪은 것 외에는 평소 건강에 이상 없던 A씨였다. A씨의 배우자는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와 장의비를 지급해달라고 신청했지만 거절당했다. A씨의 죽음이 업무상 과로와 관련 없다는 게 근로복지공단 측 입장이었다.

원심 “업무상 재해로 보기 어려워”

1심과 2심은 근로복지공단의 손을 들어줬다. A씨의 질병은 바이러스 감염에 따른 것으로 업무가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쳤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주된 판단 근거였다. A씨 동료는 1심 법정에서 “A씨는 경력직이라는 이유로 신입사원들에 비해 힘든 작업을 많이 했다”며 “2016년 8월 이후에는 연차소진 강요 및 연장 근무 통제 강화로 실제 작업자와 작업시간이 줄어든 상태에서 종전과 같은 작업량에 맞춰야 했기 때문에 단위 시간당 업무 강도가 높았다”고 증언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2심 재판부는 ‘고용노동부가 고시한 업무상 재해 기준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근거를 추가로 들며 1심 판단을 유지했다. A씨의 사례에 해당하는 2013년 고시는 뇌혈관 질병 등의 업무상 재해 인정 기준을 ‘사망 전 12주 동안 1주 평균 60시간 초과 근무’로 삼는다. 이 기준대로면 주 최대 56시간을 일한 A씨는 ‘업무상 재해’에 속하지 않는다. 이를 토대로 재판부는 “A씨의 업무 시간이 2013년 고시 기준에 미치지 못하므로 과로했다고 판단하기 어렵다"고 했다.

1ㆍ2심 뒤집은 대법원 판단은?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뉴스1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뉴스1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법원이 ‘주 60시간 초과 근무’를 명시한 개정 전 고시를 적용할 의무가 없다고 했다. 고용부가 정한 고시는 상급기관이 감독기관인 근로복지공단에 주는 행정지침일 뿐 업무상 과로를 판단하는 절대적 기준은 될 수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법원이 ‘개정 전 고시’를 적용할 의무는 없고 개정 취지를 참작해 ‘개정된 고시’로 과로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2심 재판부가 적용한 2013년 고시는 2017년 말에 개정돼 업무상 재해 인정 기준을 ‘1주 평균 60시간 초과 근무’에서 ‘1주 평균 52시간 초과 근무’로 완화했다.

강도 높은 업무가 업무상 재해 원인이 된다는 판단도 내놨다. 대법원은 “A씨는 동료 근로자들보다 성실히 근무했고 업무 강도가 높았으며 작업 인력이 다소 부족한 상황에서 개인적 사유로 연가를 사용해 휴무하기에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며 “주야 교대근무로 과로가 누적되어 초기 감염이 발생했고 휴식을 취하지 못한 채 야간 근무하던 중 감염이 악화해 사망에 이르게 됐다고 볼 여지가 크다”고 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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