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학대 왜 반복되나
‘정인이 사건’의 파장이 커지자 정치권에서는 긴급 회의와 간담회를 개최하고, 관련 법안을 고치는 등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그러나 법무부 여성아동인권과장을 지낸 김영주 변호사는 발의된 법안이나 정책 가운데 “실효성 있어 보이는 내용은 하나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보여주기식 정책과 졸속 입법이라는 얘기다.
김영주 변호사 #공동조사단 구성해 진상 파악 #아동 학대 원인 제대로 찾아야
- 법 개정이 효과 있을까.
- “정부나 정치권의 대응을 보면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게 당연해 보인다. 이번에도 달라진 것 없이 넘어간다면 정인이 사건은 또 일어난다. 장담한다. 지난해 충남 천안에서 여행가방에 가둬 숨지게 한 사건이 났을 때도 똑같았다. 아동 학대 문제는 원래 어렵다. 하루, 이틀에 대책이 나올 수가 없다. 진지하게 조사하고 연구해서 해결책을 내놔야 하는데, 그동안 한 번도 논의하지 못한 채 폐기한 법안도 많다. 솔직히 법 자체는 이상하거나 다른나라보다 떨어지는 게 아니다.”
- 외국에서는 어떻게 했나.
- “영국에서 2000년 친척의 학대로 어린이가 숨졌다. 영국 정부는 공동조사단을 구성해 2년 동안 사건을 조사하고 아동보호 체계의 개선점을 마련했다. 피해 아동의 이름을 따 2002년 내놓은 게 ‘클림비 보고서’다. 우리도 정부와 국회, 전문가 집단이 모두 모여서 끈질기게 진상조사를 하고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내야 한다. 정부나 정치인들이 잘 모르면서 아는 척하고 대충 넘어가는 게 가장 큰 잘못이다. 아동 학대 문제를 뿌리뽑겠다는 진정성을 갖고 제대로 원인을 찾았으면 좋겠다.”
- 여론은 강력한 처벌을 원한다.
- “현재 아동 학대 가해자 형량 상한선은 무기징역까지다. 대법원의 양형기준을 조정하면 된다. 형량을 강화하면 신고율을 높이거나 범죄사실을 입증하는 것만 어려워진다. 피해 아동을 가해자로부터 즉각 분리하는 것 역시 현행 아동 학대범죄 처벌 특례법에서 재학대의 위험이 급박·현저한 경우 분리 보호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가해자 처벌보다 중요한 건 아동을 보호하는 방안이다.”
- 일선 공무원이나 경찰관도 어려움이 적지 않다고 한다.
- “현장의 얘기를 많이 들어야 한다. 현행 법과 제도로 막을 수 있었던 일을 막지 못한 건 현장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정인이 사건의 경우에도 경찰과 아동보호전문기관 담당자가 동네 소아과 의사의 소견만 믿고 학대 여부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다. 경찰이 아동 학대 문제에 전문성이 있어야 소신껏 수사할 수 있고, 민원 제기 등 외부 요인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현실은 어떤가. 복지부나 경찰 내에서 아동복지를 담당하면 승진에 도움이 된다고 과연 느낄까. 욕만 먹고 잘못하면 이렇게 큰 사고만 나고, 빨리 도망가고 싶을 것이다.”
- 개선 방안은 뭔가.
- “경찰이 민원에 자신있게 대응하지 못하는 것은 전문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왜 특례법에 따른 조치라고 단호하게 말을 못하나. 경찰 한 명 한 명은 제대로 교육받은 엘리트들인데, 이런 일만 일부러 못하는 걸까. 개인의 문제로 돌릴게 아니라 조직 내부의 문제점을 꼼꼼하게 찾아내서 고쳐야 한다. 경찰 일 못하게 민원 제기하고 그러면 공무집행방해로 처벌하라. 대신 아동 학대 담당자들이 전문성을 키울 수 있는, 의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줘야 한다.”
최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