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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여주기식 정책, 졸속 입법 실효성 전혀 없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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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9호 04면

아동 학대 왜 반복되나 

김영주

김영주

‘정인이 사건’의 파장이 커지자 정치권에서는 긴급 회의와 간담회를 개최하고, 관련 법안을 고치는 등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그러나 법무부 여성아동인권과장을 지낸 김영주 변호사는 발의된 법안이나 정책 가운데 “실효성 있어 보이는 내용은 하나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보여주기식 정책과 졸속 입법이라는 얘기다.

김영주 변호사 #공동조사단 구성해 진상 파악 #아동 학대 원인 제대로 찾아야

법 개정이 효과 있을까.
“정부나 정치권의 대응을 보면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게 당연해 보인다. 이번에도 달라진 것 없이 넘어간다면 정인이 사건은 또 일어난다. 장담한다. 지난해 충남 천안에서 여행가방에 가둬 숨지게 한 사건이 났을 때도 똑같았다. 아동 학대 문제는 원래 어렵다. 하루, 이틀에 대책이 나올 수가 없다. 진지하게 조사하고 연구해서 해결책을 내놔야 하는데, 그동안 한 번도 논의하지 못한 채 폐기한 법안도 많다. 솔직히 법 자체는 이상하거나 다른나라보다 떨어지는 게 아니다.”
외국에서는 어떻게 했나.
“영국에서 2000년 친척의 학대로 어린이가 숨졌다. 영국 정부는 공동조사단을 구성해 2년 동안 사건을 조사하고 아동보호 체계의 개선점을 마련했다. 피해 아동의 이름을 따 2002년 내놓은 게 ‘클림비 보고서’다. 우리도 정부와 국회, 전문가 집단이 모두 모여서 끈질기게 진상조사를 하고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내야 한다. 정부나 정치인들이 잘 모르면서 아는 척하고 대충 넘어가는 게 가장 큰 잘못이다. 아동 학대 문제를 뿌리뽑겠다는 진정성을 갖고 제대로 원인을 찾았으면 좋겠다.”
여론은 강력한 처벌을 원한다.
“현재 아동 학대 가해자 형량 상한선은 무기징역까지다. 대법원의 양형기준을 조정하면 된다. 형량을 강화하면 신고율을 높이거나 범죄사실을 입증하는 것만 어려워진다. 피해 아동을 가해자로부터 즉각 분리하는 것 역시 현행 아동 학대범죄 처벌 특례법에서 재학대의 위험이 급박·현저한 경우 분리 보호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가해자 처벌보다 중요한 건 아동을 보호하는 방안이다.”
일선 공무원이나 경찰관도 어려움이 적지 않다고 한다.
“현장의 얘기를 많이 들어야 한다. 현행 법과 제도로 막을 수 있었던 일을 막지 못한 건 현장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정인이 사건의 경우에도 경찰과 아동보호전문기관 담당자가 동네 소아과 의사의 소견만 믿고 학대 여부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다. 경찰이 아동 학대 문제에 전문성이 있어야 소신껏 수사할 수 있고, 민원 제기 등 외부 요인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현실은 어떤가. 복지부나 경찰 내에서 아동복지를 담당하면 승진에 도움이 된다고 과연 느낄까. 욕만 먹고 잘못하면 이렇게 큰 사고만 나고, 빨리 도망가고 싶을 것이다.”
개선 방안은 뭔가.
“경찰이 민원에 자신있게 대응하지 못하는 것은 전문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왜 특례법에 따른 조치라고 단호하게 말을 못하나. 경찰 한 명 한 명은 제대로 교육받은 엘리트들인데, 이런 일만 일부러 못하는 걸까. 개인의 문제로 돌릴게 아니라 조직 내부의 문제점을 꼼꼼하게 찾아내서 고쳐야 한다. 경찰 일 못하게 민원 제기하고 그러면 공무집행방해로 처벌하라. 대신 아동 학대 담당자들이 전문성을 키울 수 있는, 의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줘야 한다.”

최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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