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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 마스크 예산 손놓고…이제야 돈 모자란다는 법무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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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가 지난해 2021년도 예산안의 국회 심의 과정에서 방역 관련 예산은 사실상 방치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앞서 법무부는 동부구치소를 중심으로 한 전국 교정시설 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감염 확산과 관련해 마스크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단 언론 보도가 이어지자 지난달 29일 자료를 내고 “예산상 문제로 전(全) 수용자에 대한 지급이 어려운 점이 있었다”고 주장했었다. 하지만 예산 심사 과정에서 법무부는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른 수십억 원대 예산 증액만 요구했을 뿐, 코로나19 방역이나 마스크 수급 대책 관련 예산은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 방역 관련 예산을 늘리려는 의지가 없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국회 예산 심사때 방역 예산 증액 요구 안해 #수사권 조정 예산 증액에만 몰두

5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서울 동부구치소에서 마스크를 쓴 수용자(왼쪽 위)가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이날 동부구치소는 직원 530명과 수용자 338명을 대상으로 6차 전수조사를 실시했다. 연합뉴스

5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서울 동부구치소에서 마스크를 쓴 수용자(왼쪽 위)가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이날 동부구치소는 직원 530명과 수용자 338명을 대상으로 6차 전수조사를 실시했다. 연합뉴스

수사권 조정 예산 증액…방역 예산은 정부안 그대로 

5일 국회와 관계부처에 따르면 법무부는 예산 심의 과정에서 마스크 등 방역 관련 예산 증액 요구를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6회에 걸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등조정소위 회의록에서 마스크 보급 등 교정시설 방역과 관련한 언급은 전무하다. 자연히 방역물품 구입 예산 7억2300만원은 지난해 12월 2일 원안 그대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대신 법무부는 수사권 조정과 관련한 교정시설 현대화 예산 증액을 중점 추진했다. 그 결과 정부 원안 대비 5억6000만원을 늘렸다. 애초 법무부의 증액 요구 규모는 이보다 훨씬 컸다. 이영희 법무부 교정본부장은 지난해 11월 11일 국회 법제사법위 예산심사소위에 출석해 교정시설 내 접견실 증설·현대화에 필요한 예산 56억2300만원 증액을 요구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안이 올 1월부터 시행되면 경찰의 공무상 접견이 대폭 늘어날 것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이런 법무부의 요구는 법사위에선 전액 반영됐다. 하지만 국회 예결위로 넘어가면서 증액 규모가 삭감됐다. 교정본부 관계자는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시행해보지도 않고 모든 교정시설의 접견실을 확충하는 건 타당하지 않다는 의견이 받아들여져 일단 접견 수요가 많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확충하고 추이를 지켜보자는 취지에 따라 소폭 증액에 그쳤다”고 설명했다.

서울동부구치소 6차 전수조사가 예정된 5일 오전 서울 송파구 동부구치소에서 방호복을 입은 한 관계자가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동부구치소 6차 전수조사가 예정된 5일 오전 서울 송파구 동부구치소에서 방호복을 입은 한 관계자가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연합뉴스

교정시설 마스크 예산 5억원에 불과  

법무부가 방역에 안일하게 대처한 나머지 관련 예산 증액 기회를 놓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예산안이 법사위 예비심사를 거쳐 예결위로 넘어온 시점은 지난해 11월 중순 이후로 광주교도소·서울 동부구치소 등에 확진자 수가 급증할 때였다. 지난해 11월 30일부터는 신입 수용자에게 KF80 마스크를 나눠줬지만, 기존 수용자에겐 예산 부족을 이유로 개별 구입만 허용하던 시기였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실이 이날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장갑·손소독제 등을 제외한 방역 마스크 구입 예산은 총 5억1072만원이었다. 그마저도 400원짜리 덴탈 마스크를 수용자 5만2300명에게 월 8개씩 3개월간 지급하기 위한 것이었다.

윤옥경 경기대 교정보호학과 교수는 “국가시설에 수용된 사람들에겐 기본적으로 마스크가 무료로 배포돼야 하는데, 마스크 예산이 5억원에 그친 건 법무부가 너무 안일하게 판단한 게 아닐까 싶다”며“문제가 터진 이상 예산 탓만 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예비비 활용 등 전 수용자 마스크 지급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용구 법무부 차관이 5일 오전 경기 수원시 팔달구 수원구치소를 찾아 수용자 방역 상황에 대한 브리핑을 받고 있다. 이 차관은 이날부터 당분간 매일 서울동부구치소 등을 방문해 코로나19 집단 발생 관련 대응실태를 점검한다고 법무부가 밝혔다. 연합뉴스

이용구 법무부 차관이 5일 오전 경기 수원시 팔달구 수원구치소를 찾아 수용자 방역 상황에 대한 브리핑을 받고 있다. 이 차관은 이날부터 당분간 매일 서울동부구치소 등을 방문해 코로나19 집단 발생 관련 대응실태를 점검한다고 법무부가 밝혔다. 연합뉴스

“코로나19 유입 차단 자화자찬”  

한편 법무부가 지난해 연말 유튜브를 통해 공개한 홍보 영상에 검·경 수사권 조정과 함께 ‘교정시설 내 코로나19 유입 차단’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교도작업 면 마스크 지역사회 등 공급’ 등을 성과로 내세운 게 이날 뒤늦게 알려져 빈축을 샀다. 이날 오후 6시 기준 전국 교정시설 내 코로나19 확진자는 전날 대비 8명(서울구치소 4명, 서울남부교도소 2명, 천안교도소 1명, 영월교도소 1명)이 늘어난 총 1125명으로 집계됐다. 법무부는 이날 서울동부구치소 직원·수용자 868명에 대한 6차 전수검사를 실시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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