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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통째 쉬었다, 그건 지옥" 목빠지게 백신만 찾는 그들

중앙일보

입력

“우리의 (새해)소원은 코로나 종식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의 피해 업종 사장들에게 2021년 새해소망을 묻자 돌아온 답이다. 노래방, PC방과 실내체육시설인 헬스장 업주들은 “2020년 한해를 견뎌왔지만 한계에 다 달은 지 오래”라고 한다.

서울 동작구에서 PC방을 운영하는 김기도(42) 사장. 그는 "코로나를 버티기 위해 팔아야만 했던 컴퓨터 30대를 되찾는 게 새해 목표"라고 했다. [김씨 제공]

서울 동작구에서 PC방을 운영하는 김기도(42) 사장. 그는 "코로나를 버티기 위해 팔아야만 했던 컴퓨터 30대를 되찾는 게 새해 목표"라고 했다. [김씨 제공]

서울 동작구에서 PC방을 운영하는 김기도(42) 사장, 경기 파주에서 헬스장을 운영하는 오선영(52) 사장, 노래연습장을 운영하는 이상모(56) 사장을 지난해 12월 30일 중앙일보가 만났다. 이들은 2020년을 “잊을 수 없는 지옥”이라 말한다. 코로나19 ‘직격탄’으로 매일 생존의 갈림길에서 보내야 했다. 헬스장과 노래방은 재난지원금 300만원을, PC방은 200만원을 받는다. 그러나 이들은 “턱없이 모자란 지원금보다 백신이 먼저”라고 호소했다.

2020년 이야기를 해달라.

김 사장=컴퓨터 128대를 놓고 PC방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최근에 30대를 팔았다. 월세랑 전기세, 인건비를 감당할 돈이 부족해 결국 컴퓨터까지 팔아야 했다. 매장이 큰 편이다 보니 임대료, 인건비, 전기요금 등 한 달 고정비용만 2000만원이 들어간다. 매출이 전년 대비 절반도 안 됐다. 소상공인 대출부터 카드 현금서비스까지 받을 수 있는 대출은 다 받았다.

경기 파주에서 헬스장을 운영하는 오선영(52) 사장이 자신의 헬스장에서 찍은 사진. 그는 ″헬스장이 2020년 거의 문을 닫으면서 오래 함께 일했던 트레이너 4명이 헬스장을 나가야 했다. 2021년에는 다시 같이 일하면 좋겠다"고 했다. [오씨 제공]

경기 파주에서 헬스장을 운영하는 오선영(52) 사장이 자신의 헬스장에서 찍은 사진. 그는 ″헬스장이 2020년 거의 문을 닫으면서 오래 함께 일했던 트레이너 4명이 헬스장을 나가야 했다. 2021년에는 다시 같이 일하면 좋겠다"고 했다. [오씨 제공]

오 사장=헬스장은 보통 규모가 크고 기구도 많다 보니 사정이 더 어렵다. 200평 규모의 헬스장 운영하다 보니 임대료 감당이 안 돼서 5000만원 대출받았다. 동료 헬스장 관장이 지난해 11월에 1000평 규모 헬스장을 오픈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1년 만에 문을 닫았다. 헬스장을 열면서 빚을 많이 졌는데 “내가 죽으면 가족들이 빚더미에 앉기 때문에 살아서 노가다(일용직 노동)라도 해야 한다”고 하더라. 그게 지금 우리 상황이다.

이 사장=노래방은 2020년을 통째로 쉬었다고 보면 된다. 집합금지로 문을 아예 못 열었던 기간만 약 80일이다. 영업한다고 해도 코로나19로 노래방에 오는 손님도 거의 없다. 문을 닫고 월세로 600만원을 꼬박꼬박 내거나 문을 열고 계속 적자를 보거나 둘 중 하나다. 거리두기 2단계 때는 오후 9시까지 영업했는데 노래방에 보통 첫 손님이 오는 시각이 그쯤이다. 손님을 1명도 못 받을 때도 많았다.

2020년을 돌아봤을 때 아쉬움은

김 사장=그때그때 거리두기 단계를 격상하거나 하향하는 부분에 불만이 크다. 부분적으로 어느 업종은 완전히 운영 못 하게 하고, 다른 업종은 그대로 두면 제한 안 하는 곳에 사람이 몰리는 게 당연한 일 아니겠나. 애초에 2주 정도 거리두기를 3단계로 올려서 전국적으로 확진자를 확 줄였으면 효과가 있었을 것 같다. 11월 24일 2단계, 12월 8일부터 지금까지 2.5단계다. 1달 동안 나아진 게 없다.

오 사장=헬스장은 거리두기로 인한 집합금지도 문제지만, 근본적으로 확진자가 줄지 않으면 영업이 안 된다. 언제 다시 문을 닫을지 모르는데 회원 등록을 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나. 재난지원금을 업종에 따라 일괄 지원하는 것도 잘못됐다. 1달에 1000만원이 나가는데 300만원으로는 1달도 못 버틴다. 같은 헬스장이라고 해도 1000평짜리가 있고, 100평짜리가 있다. 업종과 규모에 따라 차등 지급해야 한다.

서울 마포구에서 노래방을 운영하는 이상모(56) 사장이 자신의 노래방 앞에서 찍은 사잔. 이 사장은 ″일상을 되찾는 게 2021년의 목표"라고 밝혔다. [이씨 제공]

서울 마포구에서 노래방을 운영하는 이상모(56) 사장이 자신의 노래방 앞에서 찍은 사잔. 이 사장은 ″일상을 되찾는 게 2021년의 목표"라고 밝혔다. [이씨 제공]

이 사장=노래연습장에 대한 인식이 안 좋아 속상하다. 코로나19 종식을 누구보다 원하는 영세 소상공인인데 코로나19 감염원처럼 여겨진다. 4월에 처음 노래방 영업중지를 할 때는 정부나 공무원도 미안한 기색이 있었다. 그런데 반복되니까 3차 대유행 때는 구청에서 문자 한 통 보내고 끝이더라. 문을 닫는 게 당연한 일은 아니잖나. 재난지원금만 해도 ‘왜 자영업자들한테 돈을 퍼 주냐’는 댓글을 볼 때마다 억울하고 화난다.

2021년 계획과 소원은

김 사장=컴퓨터 30대를 빈자리에 다시 채우고 싶다. 코로나19 확산 이전과 비슷한 수준으로 손님이 오면 대출을 받아서라도 팔아버린 컴퓨터를 곧장 되찾을 생각이다. 중고로 팔릴 땐 헐값이었고, 다시 사려면 돈이 더 들겠지만 가장 큰 소원이다. 내년 상반기까지는 어떻게든 버티겠다. 국내에 백신이 빨리 들어오고 집단 면역이 형성되기 시작할 거라고 믿는다.

김 사장이 운영하는 PC방 컴퓨터가 있던 자리가 텅 비어 있다. [김씨 제공]

김 사장이 운영하는 PC방 컴퓨터가 있던 자리가 텅 비어 있다. [김씨 제공]

오 사장=단 하루라도 빨리 백신 접종이 시작돼서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가는 게 새해 소원이다. 기다리면 당연히 언젠가 국내에서도 백신 접종을 하겠지만, 그 시기를 하루라도 앞당길 수 있으면 좋겠다. 2020년에 코로나19로 인해 회원이 끊기고 트레이너 4명이 헬스장을 나갔다. 동료였던 트레이너들과 함께 다시 헬스장에서 회원을 받고 가르치고 싶다.

이 사장=일상을 되찾는 것, 2019년 이전으로 돌아가는 게 소원이다. 백신을 다 맞는다고 해도 이전으로 돌아가는 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어떻게든 코로나19부터 끝내자. 일상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이전까지는 몰랐다. 소중한 일상, 정상으로 돌아가고 싶다. 요즘 화가 많이 늘었는데, 그렇게 되면 성격도 다시 이전처럼 돌아갈 수 있지 않겠나.
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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