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수용자 셋중 한명 감염…나태와 방치가 '지옥 구치소' 만들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9일 서울 송파구 동부구치소에서 한 수용자가 자필로 쓴 글을 취재진에게 보이고 있다. 종이에는 '확진자 한 방에 8명씩 수용, 서신(편지) 외부발송 금지'라고 적혀있다. 뉴시스

29일 서울 송파구 동부구치소에서 한 수용자가 자필로 쓴 글을 취재진에게 보이고 있다. 종이에는 '확진자 한 방에 8명씩 수용, 서신(편지) 외부발송 금지'라고 적혀있다. 뉴시스

수용자 셋 중 한 명꼴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서울 동부구치소 집단감염의 원인과 책임에 대한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당국의 초동 대응 잘못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3밀(밀폐·밀집·밀접)’ 환경에서 확진자가 나왔는데도 전수검사를 시행하지 않는 등 늑장 대응을 해 초대형 집단감염의 화(禍)를 불렀다는 것이다. 확진된 수용자 가운데 첫 사망자가 이날 발생하기도 했다.

동부구치소는 왜 ‘코로나 지옥’이 됐나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동부구치소에 수감된 확진자들이 28일 오전 청송군 진보면에 위치한 경북북부 제2교도소(청송교도소)에 마련된 생활치료센터로 이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동부구치소에 수감된 확진자들이 28일 오전 청송군 진보면에 위치한 경북북부 제2교도소(청송교도소)에 마련된 생활치료센터로 이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29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서울 동부구치소에서는 전날 233명이 추가로 확진 판정을 받아 관련 확진자는 762명(수용자 720명·직원 21명·가족 등 21명)으로 늘었다. 수용자만 놓고 보면 전체(18일 기준 2419명)의 약 3분의 1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직원(전체 425명)의 감염률은 5% 정도다. 지난 3월 대구 신천지와 8월 서울 사랑제일교회 사태에 이어 단일 집단 발생 규모로는 세 번째로 많은 숫자다.

서울 동부구치소에서 확진자가 쏟아진 이유로는 한발 늦은 전수검사가 원인으로 지목된다. 지난달 27일부터 직원이 잇따라 확진됐지만, 수용자에 대한 전수검사는 이달 14일 수용자가 처음으로 확진 판정을 받은 후 나흘 만(18일)에 이뤄졌다. 구치소 관련 최초 확진 뒤 3주 만에 전수조사를 해 위험을 키웠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검찰 관계자는 “미결수가 대부분인 구치소는 검찰·법원을 들락날락하는 인원도 많고, 교도관·변호인 등 외부 접촉도 계속 일어난다”며 “이들 중 한 명이라도 놓치면 자칫 지역감염으로 퍼질 우려가 있지 않나”라고 말했다.

집단생활과 환기 문제도 간과했다는 게 방역 당국의 지적이다. 박유미 서울시 시민건강국장은 이날 코로나19 온라인 브리핑에서 “서울 동부구치소는 고층 빌딩 형태의 전형적인 3밀 형태며 불량한 환기 구조를 갖고 있다”며 “과밀한 수용에 따른 확진자와 비 확진자의 분리 수용 공간 부족도 원인”이라고 말했다. 동부구치소는 각 동과 모든 층이 연결돼 사실상 한 건물과 같은 구조다. 전직 교도관 이모씨는 “폐쇄된 구치소 구조 탓에 숙식을 함께하는 등 구치소 내 사람은 모두 같은 생활권이다. 절대 코로나19 안전지대가 있을 수 없는 곳”이라며 “이런 사정을 뻔히 알면서 구치소를 방치한 건 법무부”라고 말했다. 그는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과 정치적 대립각만 세우느라 정작 해야할 일을 안한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날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서울 동부구치소를 찾아 직원들에게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최선을 다해 달라고 당부했다.

전문가 “변명 없이 초기대응 실패”

서울 송파구 동부구치소에서 29일 오전 한 수용자가 손으로 'X'자를 표시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송파구 동부구치소에서 29일 오전 한 수용자가 손으로 'X'자를 표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선제적·적극적 대응에 나서지 않은 법무부와 방역 당국이 책임을 피하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 내과 교수는 ▶최초 확진자가 나왔을 때 전수조사를 하지 않은 것 ▶신규 수감자를 검사하지 않고 자가격리시킨 것 등을 주요 문제로 지적했다. 전수조사·사전검사를 통해 무증상 감염자를 잡아내지 못해 대규모 집단감염이라는 후폭풍을 불러왔다는 설명이다. 천 교수는 “군대와 구치소(교도소)는 해외에서도 집단감염 사례로 보고가 잦은 곳”이라며 “군대는 전수조사를 하는데 구치소는 그렇지 않았다. 초기 대응에 실패하고 (구치소를) 방치했다는 지적에 대해선 (법무부 등 관련 당국이) 변명할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방역은 물론 수용자의 인권 문제에도 소홀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천 교수는 “마스크가 제때 지급되지 않았다고 하는데, 기본적인 방역 수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던 것”이라며 “수용자가 인권 사각지대에 방치된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사망할 수도 있는 감염병이 수용시설에 퍼지는 상황에서 정부가 책임을 다했는지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