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계 절차 흠결' 짚은 홍순욱…윤석열 임기 다 채울 수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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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법원의 검찰총장 징계처분 효력 집행정지 신청 인용에 따라 업무에 복귀한 윤석열 검찰총장이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행정법원의 검찰총장 징계처분 효력 집행정지 신청 인용에 따라 업무에 복귀한 윤석열 검찰총장이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한 집행정지 소송에서 법원이 또다시 윤석열 검찰총장의 손을 들어줬다. 특히 재판부가 징계위원회의 절차적 부당성을 결정문에 담으면서 사실상 윤 총장은 임기를 무사히 마치게 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홍순욱 재판장)는 24일 오후 10쯤 윤 총장이 제기한 징계 2개월에 대한 집행정지를 인용했다. 이는 ‘본안 소송’으로 불리는 징계 처분 취소에 관한 1심 소송 판결 선고일로부터 30일까지 효력이 발생한다.

징계 사유 절반은 “인정 안 돼”

재판부는 징계위원회가 인정한 4가지 사유 중 2개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일단 윤 총장이 국정감사에서 “퇴임하고 나면 우리 사회와 국민을 위해 어떻게 봉사할지 천천히 생각해 보겠다”고 말한 부분이 정치적 중립성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훼손했다는 징계 사유를 인정하지 않았다. ‘총장의 정치활동 가능성이 논의되는 것 자체가 주요 사건 수사의 정치적 이용 가능성이 있다’는 법무부의 주장은 추측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또 윤 총장이 채널A 사건의 수사지휘권을 대검 부장회의에 위임했다가 이를 번복하고 자문단에 회부하도록 지시한 행위가 ‘수사 방해’에 해당한다는 징계사유에 관해서도 “소명이 부족하다”고 봤다. 수사지휘권 위임과 철회는 검찰총장의 권한이라는 것이 이유다.

다만 재판부는 윤 총장의 채널A 사건 관련 ‘감찰 방해’ 징계사유는 소명됐다고 밝혔다. 윤 총장이 대검 감찰부장의 감찰 개시 조치가 현저히 부당하다는 등의 이유 없이 감찰 중단을 지시했기 때문이다. 또 “주요 사건 재판부 판사들의 출신, 세평 등을 정리해 문건화한 것은 매우 부적절하고 차후 이와 같은 종류의 문건이 작성되어서는 안 된다”고 명확히 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법무부가 제출한 자료만으로 이러한 문건이 반복적으로 작성됐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는 어려우므로 본안 소송에서 추가 심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대통령 강조한 ‘절차적 정당성’에도 흠결

재판부는 징계 절차에도 문제가 있음을 명확히 했다. 징계위는 참석한 4명의 위원 중 기피 대상자를 퇴장시킨 후 나머지 3명의 투표로 그를 징계위에서 배제할지 결정했다. 이는 재적 위원 중 과반수에 해당하는 4명 이상의 위원이 출석해야 한다는 검사징계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또 징계의결에 참여할 수 없는 기피신청을 받은 위원들이 번갈아가며 참여한 의결 역시 의사정족수에 미달했으므로 무효라고 강조했다.

보통 징계 취소 소송에서는 절차적 정당성이 쟁점이 되는 경우가 많다. 절차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이 인정되면 징계 사유에 상관없이 처분이 취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사는 “문재인 대통령도 강조했던 ‘절차적 정당성’이 무너졌다는 걸 법원이 확인해줬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본안 소송 결과 달라져도 임기에는 영향 없어

법조계 전문가들은 징계 사유 절반이 인정되지 않았고, 절차적 정당성에도 하자가 있다는 점이 드러났으므로 본안 소송에서 윤 총장이 승소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한다. 홍순욱 재판장도 결정문에 “윤 총장이 본안 청구 승소 가능성이 없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적었다.

홍 재판장은 근무연한인 3년을 다 채워 오는 2월 있을 인사 대상에 포함된다. 새로운 재판부가 꾸려지면 본안 소송의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윤 총장에게 부정적 영향을 없을 거라는 예상이 나온다.

만약 본안 소송에서 법무부가 승소하더라도 윤 총장 측은 항소, 상고할 것으로 예측된다. 사건이 대법원까지 간다면 오는 7월 24일로 만료되는 윤 총장의 임기까지 결론이 나오기는 쉽지 않다. 정직 2개월의 징계 취소가 확정되지 않는 한 법무부는 윤 총장을 상대로 새로운 징계를 내릴 수 없다.

본안 소송에서 윤 총장이 승소했는데도 법무부가 윤 총장에게 새로운 징계를 내리기 위해서는 막대한 정치적 부담감을 안아야 한다. 윤 총장이 패소하더라도 임기 전까지 새로운 징계를 내리기는 불가능한 상황이므로 윤 총장의 임기는 지켜진다는 결론이 나온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윤 발언, 재판에도 영향

국정원 댓글사건 수사팀장이었던 윤석열 당시 여주지청장이 2013년 10월 21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검찰청에서 열린 법사위 2013 서울고검, 서울중앙지검 등 검찰산하 기관 국정감사에서 위원들로부터 보고 여부에 대해 질문을 받고 있다. [중앙포토]

국정원 댓글사건 수사팀장이었던 윤석열 당시 여주지청장이 2013년 10월 21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검찰청에서 열린 법사위 2013 서울고검, 서울중앙지검 등 검찰산하 기관 국정감사에서 위원들로부터 보고 여부에 대해 질문을 받고 있다. [중앙포토]

재판부는 “검찰총장의 법적 지위, 임기 등을 고려하면 2개월 동안 총장으로서의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금전으로 보상할 수 없는 손해”라며 “당사자가 참고 견디기 현저히 곤란한 유형‧무형의 손해에 해당한다”고 봤다. 검사들을 총괄해 지휘‧감독하는 검찰총장이라는 지위가 갖는 무게감을 고려한 판단으로 해석된다.

반면 “징계처분의 효력이 중지된다면 윤 총장의 징계 사유와 관련한 사건의 수사에서 공정한 검찰권의 행사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법무부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검찰총장은 공익을 대표하는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므로 그의 복귀가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는 근거가 소명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와 관련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윤 총장의 과거 발언을 언급하기도 했다. 결정문에 “과거 국정원 댓글 사건을 처리하며 소신 있게 수사했고, 자신의 이러한 신념을 피력하기도 했다”고 적었다. 그러나 이는 윤 총장의 직무가 정지된다면 검찰 조직 전체에 손해를 미칠 수 있다는 윤 총장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로도 이용됐다. 재판부는 “국민은 일선 검사들이 검찰총장이나 정치권의 편이 아닌 국민의 편에서 직무를 수행할 것을 신뢰하고 기대하고 있다”며 “윤 총장의 직무 정지로 검찰 전체가 회복할 수 없는 손해를 입게 된다는 점을 소명할 자료는 없다”고 밝혔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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