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축마라톤 완주땐 학점에 '+α'

중앙일보

입력

지난 주말 오후 서울 여의도 한강시민공원. 몸에 착 달라붙는 유니폼을 뽐내며 마라토너들이 달릴 채비를 하고 있다. 삼삼오오 떼를 지어 몸을 푸는 마라토너의 모습은 이제 한강 둔치에서 흔한 풍경 중 하나다.

티셔츠·운동화 차림의 20대 젊은이들이 나타났다. 스트레칭을 하는 걸 보니 이들도 마라토너 같다. 한데 영 어색하다. 역력한 긴장된 표정. 게다가 젊은 사람들이 몸은 왜 그리 뻣뻣한지. 아무리 봐도 숙련된 마라토너는 아닌 것 같다.

"똑바로 안 해! 이것도 안되면서 5km나 뛰겠어?"

대오 맨 앞에서 불호령이 떨어졌다. 나이가 좀 든 얼굴이다. 기록지 한 웅큼을 쥐고 있는 청년에게 물었다. "뭐 하시는 분들인지."

"성균관대 학생들입니다. 맨 앞의 저 분이 통계학과 홍종선(44) 교수님이고요. 지금 시험 중입니다."

스트레칭이 끝나자 76명이 일제히 출발선 위에 섰다. 겁먹은 얼굴도 적지 않지만 재미있다는 표정들이다. 출발 신호가 울리자 그래도 걸음은 힘차게 내딛는다.

기록지를 쥐고 있던 청년은 홍성식(35.박사과정)조교. 그로부터 '시험'에 얽힌 자초지종을 들었다.

마라톤 매니어인 홍교수는 '수리 통계' 과목을 듣는 학생들에게 마라톤을 권유(?)했다. 여학생은 10km, 남학생은 20km를 완주하면 중간 고사 점수에 '플러스 α'를 줄 수 있다는 조건과 함께. 학생들은 말그대로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한강변을 달려야 한다. 이렇게 해서 붙여진 이름이 '중간 다음 고사'다.

"학교에선 이미 유명한 행사가 됐습니다. 이번엔 특히 김군선(56.노어노문학과).박기순(64.신문방송학과)교수님이 학생들과 함께 참가하셨어요. 이성 친구랑 같이 나온 학생도 여럿입니다."

"학생들이 영 서툴러 보이던데 안전사고라도 나면 어쩌나"하고 묻자 홍조교는 졸업생이 산악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챙겨주고 있다고 말한다.

"홍교수님의 철인3종경기 클럽 회원 8명도 함께 뛰고 있습니다. 오늘이 벌써 네번째인데 이 정도 준비도 없겠습니까."

출발한 지 한시간쯤 지나자 학생들이 하나둘씩 돌아왔다. 뜻밖에도 하나같이 웃는 얼굴이었다. 힘차게 팔을 내뻗기도 하고 고함을 치기도 했다. 여학생 두명만 기권했을 뿐 나머지는 완주했다.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어요. 사실 밤마다 연습했거든요. 기록이 더 잘 나올 수도 있었는데."

여자부 1등을 차지한 오희석(24)씨가 분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남자친구 구한모(24.통계학과3년)씨를 따라 나온 경희대생이다.

시험인지, 대회인지가 끝나자 교수와 학생들은 근처 원효대교 아래 그늘에서 막걸리 잔치를 벌였다. 유일하게 30km를 완주한 홍교수가 막걸리잔을 연신 돌렸다.
"대회 이름이 평산배 마라톤인데, 그럼 '평산'이 무슨 뜻이냐. 통계학의 기초 개념인 '평균'과 '분산'의 약자라네. 공부도 체력이 기초가 되야 제대로 된다는 뜻이지."

마라톤은 이제 국민 스포츠 중 하나다. 동호인만 1백여만명을 헤아리고 풀코스 완주자도 2만명이 넘는다. 성대생들이 출발점과 도착점으로 사용한 곳은 서울 여의도 한강시민공원 한 구석의 '한강 0km'라고 적힌 이정표다.


원래는 한강변 자전거 전용도로의 시발점이다. 한강을 따라 5㎞마다 이정표가 서있는 이곳에서 마라토너들은 자체 대회를 연다. 이날도 쌍용화재 마라톤 동호회원.동호회 러너스클럽 등이 미니 대회를 진행했다.

◇ 마라톤 정보제공 사이트
▶러너스 코리아
www.runnerskorea.com

▶마라톤 온라인
www.marathon.pe.kr

▶달리는 의사들
www.runningdr.co.kr

▶런 조이
www.runjoy.com

▶e마라톤
www.emaratho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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