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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N 앵커 “북, 풍선에 고사포 발사 심하네요” 외교부 “전단 살포 문제” 번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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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 16일(현지시간) 방영된 CNN 방송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오른쪽)을 인터뷰하는 크리스티안 아만푸어 수석 앵커. [CNN 캡처]

지난 16일(현지시간) 방영된 CNN 방송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오른쪽)을 인터뷰하는 크리스티안 아만푸어 수석 앵커. [CNN 캡처]

외교부가 강경화 장관의 외신 인터뷰 내용을 홍보하며 대북 전단에 대한 북한의 무력 대응을 비판한 사회자의 발언을 ‘전단을 단속해야 한다’는 취지로 전혀 다르게 번역했다.

외교부 “한글 자막처리 과정 실수” #전문가 “왜곡 번역으로 보일 소지”

16일(현지시간) 방영된 미 CNN 방송 인터뷰에서 크리스티안 아만푸어 수석 앵커는 강 장관에게 ‘대북전단금지법’(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에 대해 물었다. 강 장관은 “표현의 자유는 절대적 권리가 아니다”고 정부 입장을 강조했다. 전단 살포가 접경 지역 주민들에게 위협을 가한다는 근거로 북한이 2014년 전단 풍선에 고사포를 쏜 데 이어 지난 6월에는 개성 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고 사례를 들었다.

강 장관의 답변을 모두 들은 뒤 아만푸어는 “풍선에 고사포 발사를 비롯해 그런 식으로 반응하다니, 정도가 너무 심한 것 같군요(It really is kind of way out of proportion)”라고 말했다. 남측에서 날린 것은 무기가 아니라 풍선인데, 거기에 고사포를 쏘고 사무소를 폭파한 북한의 대응이 과도했다는 취지다.

하지만 외교부는 영상을 공식 유튜브와 페이스북 및 트위터 계정 등에 소개하며 아만푸어의 발언을 완전히 다르게 전달했다. 자체 제작한 한글 자막에서 “대북 전단 살포나 북측 발포 등의 문제에 대응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고 번역한 것이다. 정부·여당이 전단 살포를 막기 위해 만든 전단금지법의 취지에 공감하는 것처럼 들린다.

외교부는 단순한 실수라고 해명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인터뷰 내용이 많다 보니 번역 과정에서 생긴 오역”이라며 “변명의 여지가 없는 실수였다. 앞으로 오류가 없도록 더 잘 살피겠다”고 밝혔다. 21일 오후 현재 해당 부분의 한글 자막은 “대북 전단에 대공포라니 형평이 크게 어긋나긴 했네요”로 수정돼 있다.

하지만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해 유엔과 미 의회 등이 우려를 표한 가운데 이런 예민한 내용을, 특히 외교부 수장의 인터뷰 내용을 잘못 전달한 것은 단순 실수로만 보기 어려운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아만푸어가 국내외에서 인정받는 저명한 국제 문제 전문가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 그렇다. 외교부는 인터뷰 양이 많다고 해명했지만 인터뷰의 총 분량은 13분6초밖에 되지 않는다.

인권 조사 및 기록 단체인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의 신희석 법률분석관은 “해외 언론 보도를 일부러 왜곡해 번역한 것처럼 보일 소지가 충분하다. 정부는 이런 식으로 국제적 망신을 자초할 것이 아니라 유엔 등 국제사회의 인권 침해 우려를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다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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