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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은·정이용 『진, 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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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진, 진

진, 진

한고비만 넘기면 진짜 내 인생 나올 거라며 청춘을 다 보내고 보니,
 그 고비가 그냥 내 인생이었다.
 참 열심히 살았는데… 돌아보면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이동은·정이용 『진, 진』

한 편의 짧은 영화를 보는 듯한 만화다. 고된 삶과 사투를 벌이는 두 명의 ‘진’, 중년의 ‘수진’과 20대 ‘진아’의 얘기다. 미혼모였고 늘그막 연애도 결국 깨져버린 식당 아줌마 수진. 삶이 휘청거린 어느 날 병원 회복실에 홀로 몸을 뉘며 독백하는 대사다. 세 컷에 나눠진 저 대사에 중년의 회한이 느껴진다. 수진의 한숨 소리가 화면 밖까지 들리는 듯하다.

극 중 나이도 직업도 다른 두 ‘진’은 잠시 서로 스쳐 지나간다. 삶의 무게 만큼은 똑같이 짊어진 둘은 어쩌면 서로가 서로의 과거이자 미래인 것도 같다. 만화는 벼랑 끝 삶의 위태로움을 담담하게 읊조린다. 비통함을 과장하지도, 거짓 희망을 강요하지도 않아 울림이 크다. 이동은 작가는 『진, 진』을 “삶의 다함(盡)과 나아감(進)을 담은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삶이 다하는 듯한 고통이 있지만 그래도 또 나아갈 수밖에 없는 삶을 그렸다는 얘기다. “어차피 고통이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만 목청껏 함께 노래를 부르는 일”(이동은)이다. 만화는 20대 진아가 ‘다시 만난 세계’를 부르는 걸로 끝난다.

영화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이동은이 글을 쓰고, 만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정이용이 그림을 그렸다. 함께 작업한 ‘환절기’ 등은 영화로 만들어졌다.

양성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