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은 총재 “코로나19 끝나도 급격한 인플레이션 없을 것”

중앙일보

입력

물가상승률이 2년 연속 0%대에 머물 게 확실해졌다. 물가안정목표(2%)를 크게 밑도는 수준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수요 부진이 가장 큰 원인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내년부터는 물가 하방압력이 점차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가 종식되고 일상이 회복되면 급격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에 관해서는 “그렇지 않을 거로 본다”고 답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7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설명회 겸 송년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한국은행 제공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7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설명회 겸 송년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한국은행 제공

한은이 17일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결과를 발표했다. 송년 기자간담회를 겸해서다. 이에 따르면 올해 11월까지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기 대비 0.5% 상승했다. 지난해(0.4%)에 이어 0%대 중반의 저물가 흐름이다. 이 총재는 “코로나19 확산의 영향으로 국제유가가 큰 폭으로 하락한 데다 수요 측면의 물가압력이 약화했다”며 “고교 무상교육의 확대 시행, 통신비 지원 등 정책 요인도 작용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디플레이션으로 보긴 어렵다는 게 한은의 진단이다. 이 총재는 “올해 물가를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한 수요 부진, 국제유가 하락, 정부 복지정책 등이 내년엔 반대로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며 “상품·서비스 전반적으로 지속해서 물가가 하락해야 디플레이션으로 보는데 내년엔 물가상승률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종식 이후 과도하게 풀린 유동성이 급격한 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묻는 말에는 “인플레이션 확대를 우려할 정도의 상승 압력은 아닐 거로 본다”고 말했다.

“겨울 코로나 길어지면 내년 성장률에도 영향” 

빠르게 재확산하는 코로나19와 관련한 우려도 나타냈다. 이 총재는 “최근 국내외 코로나 전개 상황을 보면 지난달 경제전망 발표(11월 26일) 당시에 예상했던 것보다 더 위중하고 심각하다”며 “현재 확산세가 조기에 진정되지 않으면 소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이전 두 차례 확산 때보다 클 것”이라고 우려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도·소매업, 음식·숙박업 등의 타격이 클 것으로 내다봤다. 이 총재는 “이 업종은 고용 비중이 높다”며 “소위 취약계층, 영세 자영업자, 일용직 등의 어려움이 가중될 것으로 보여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감염병 확산세가 겨울 이후까지 꺾이지 않으면 그에 따른 소비 위축이 내년까지 성장률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할 거란 게 한은의 분석이다. 다만 수출에 대해선 낙관적 기대를 했다. 이 총재는 “반도체를 중심으로 회복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이는데 백신 보급으로 코로나19 글로벌 확산세가 생각보다 빨리 진정되면 수출이 더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7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설명회 겸 송년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한국은행 제공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7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설명회 겸 송년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한국은행 제공

최근 심화한 전세난이 저금리 때문이라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선을 그었다. 정부가 전셋값 상승의 원인으로 저금리를 지목했다는 질문을 받은 이 총재는 “전셋값은 주택 가격과 마찬가지로 금리가 영향을 미치지만, 금리 이외에도 수급 상황과 정부 정책 등 여러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면서 “최근의 전셋값 상승은 저금리 때문이라기보다는 수급 불균형 우려가 확산한 영향”이라고 말했다.

최근 국회에서 한은 설립 목적에 고용 안정을 추가하는 한국은행법 개정안이 발의된 것과 관련해선 신중한 입장을 유지했다. 이 총재는 “급격한 고령화, 불평등 심화, 급속한 기술발전 등 급변하는 환경 아래서 중앙은행이 고용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기본 취지에 충분히 공감한다”면서도 “물가 안정과 금융 안정이라는 기존 목표에 고용 안정이 추가되면 기준금리라는 한 가지 수단으로 세 가지 책무를 달성해야 하는데 실제 운용 과정에서 적지 않은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