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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SARS 신드롬

중앙일보

입력

세계를 공포 분위기로 몰아 넣고 있는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이 직장인 생활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다.

국제적으로 다급한 안건은 온라인 화상회의로 하고 있고 해외 본사의 대규모 행사가 갑자기 서울에서 열리는 바람에 예기치 않게 일이 늘어난 직장인들은 격무를 호소하기도 한다.

최근 사스발생지역에 다녀온 직장인들은 주위의 싸늘한 눈초리로 마음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일생에 단 한번뿐인 신혼여행 일정을 바꿀 수밖에 없어 허니문 스케줄이 엉망이 돼 울상인 샐러리맨도 있다. 중국.동남아 국가 등지로의 출장 취소는 이젠 기본이다.

포드코리아 한봉석(38)부장은 요즈음 포드 아시아.태평양 딜러미팅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눈코 뜰 새가 없다. 포드 본사가 3월 홍콩에서 열기로 했던 이 행사의 장소를 서울로 바꿨기 때문이다. 일정도 5월 중순으로 미뤄졌다.

이 행사는 매년 홍콩에서 개최됐지만 사스 때문에 넘어온 것으로 다음달 초 열리는 수입차모터쇼 준비도 만만치 않은데 뜻하지 않은 일이 생긴 것이다. 한부장은 "포드 임직원들의 안전을 위해 아직까지 사스 감염자가 보고되지 않은 한국으로 장소가 바뀐 것"이라며 "사스가 일감도 몰고왔다"고 말했다.

A통신기기회사 중국수출팀 직원들은 최근 회사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 팀원 29명 중 27명이 지난달 중국에 출장을 갔다 왔기 때문이다. '사스 왕따'는 회사 전체를 술렁거리게 만들고 있다. 사내 인트라넷 게시판엔 "중국 수출팀원들을 회사에서 격리해야 한다"는 글도 심심찮게 오른다.

중국수출팀 이모 대리는 "이미 사스 잠복기가 지났는데 주변 동료들이 너무하는 것 같다"며 "회사측에서 우리의 명예를 회복시켜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볼멘 소리를 냈다.

다음달 3일 결혼을 하는 SK㈜ 경영지원본부 손동하(28)씨는 신혼 여행지 때문에 한바탕 소동을 치렀다. 손씨는 3월 중순 동남아의 한 관광지를 신혼여행지로 정했다. 그러나 사스 공포가 확산되면서 부모님이 행선지를 바꾸라고 종용해 이달 초 해약할 수밖에 없었다.

손씨는 궁리 끝에 허니문 여행지로 제주도를 선택했지만 다시 한번 벽에 부닥쳤다.항공권은 어렵사리 구했지만 결혼식 당일은 물론 다음날이라도 묵을 호텔 객실을 구 할 수 없었다.

징검다리 연휴기간이기도 하지만 사스 영향으로 제주도에 관광객들이 한꺼번에 몰렸기 때문이다. 손씨는 "일단 서울에서 초야를 보내고 5월 5일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가기로 정했다"며 "단 한번인 신혼여행이 사스 때문에 엉망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지난주 3박4일로 싱가포르 출장을 가기로 했던 JVC코리아 박희정(27)씨는 사스 때문에 출장이 취소됐다. 한달여간 출장 준비에 여념이 없던 박씨로선 허탈할 수밖에 없었다. 박씨는 이번 출장을 통해 6월 한국 시장에 출시 예정인 제품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아이디어를 얻어 비즈니스에 활용할 요량이었다.

뿐만 아니다. 싱가포르 지사에서 일하는 외국인 친구의 생일 파티도 참석하지 못하게 됐다. 朴씨는 "나의 출장 일정에 맞춰 친구가 생일 파티를 이틀이나 앞당기는 배려까지 해줬는데 결국 가지 못해 서운하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한국알카텔은 본사 차원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면 아시아지역 출장을 자제하라는 지침을 받고 주요 협의는 화상회의 시스템을 통해 하고 있다. 전세계 1백30여개 국가에 흩어져 있는 직원들이 회상회의 시스템으로 앉아 회의를 한다.

정보관리부 박호범(36)과장은 "최근 화상시스템 사용률이 15% 증가해 정보관리부 업무가 그만큼 늘어났다"며 "사스와 같은 돌발 상황에 기민하게 대응한다고 생각하니 보람은 있다"고 뿌듯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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