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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13평 4인 가족”에 국민 상처…청와대 해명 번지수 틀렸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화성동탄 행복주택 단지를 방문해 김현미 국토부 장관, 변창흠 LH 사장과 내부를 살펴보고 있다. 김성룡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화성동탄 행복주택 단지를 방문해 김현미 국토부 장관, 변창흠 LH 사장과 내부를 살펴보고 있다. 김성룡 기자

“신혼부부에 아이 1명이 표준이고, 어린아이 같은 경우에는 2명도 가능하겠다.”

문 대통령 공공임대주택 방문 #청와대 “대통령은 질문한 것” 해명 #논란 핵심은 부동산에 대한 인식 #밥 없는데 빵 맛있다고 하는 격

지난 11일 경기도 화성의 13평(44㎡·전용면적) 공공임대주택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이다. ‘13평 아파트에 4인 가족이 살 수 있겠다’는 취지로 해석돼 논란이 커졌다. 비판성 언론 보도가 이어졌고, 부동산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엔 “문 대통령은 공간 개념이 없다” “서민 가슴에 비수” 등의 글이 빗발쳤다.

그러자 청와대가 민감하게 반응했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12일 0시11분, 오후 2시54분 두 차례 서면 브리핑으로 관련 보도를 반박하면서 “문 대통령의 발언은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인) 변창흠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이 ‘4인 가족도 생활 가능하다’는 취지의 설명을 하자 확인을 하며 ‘질문’한 것”이라고 했다. 오후 9시16분엔 유승민 전 의원의 ‘니가 가라 공공임대’ 언급을 비판하는 서면 브리핑을 또 냈다.

당시 상황은 변 후보자가 “애가 둘 있으면 위에 한 명, 밑에 한 명 줄 수 있고 책상도 두 개 놓고 같이 공부할 수 있다. 애가 더 크면 서로 불편하니까”라고 하자 문 대통령이 곧이어 해당 문장을 말한 것이다. 통상 의문문과 달리 말끝이 올라가지 않았다. 그저 문 대통령이 “아이 한 명이”라고 할 때 변 후보자가 “네, 네”라고 했고 “2명도”란 발언에도 “네, 네”라고 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굳이 “질문”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의 생각이 담기지 않은 발화였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자 야당에선 “누가 봐도 그건 강한 긍정의 확인성 질문”(김근식 경남대 교수), “(질문이라면) 장관 후보자(변창흠 사장)를 야단쳤어야 하는 것 아닌가”(김은혜 국민의힘 대변인)라고 했다.

문 대통령의 발언이 질문이냐 아니냐는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다. 국민은 문 대통령의 11일 발언 그 자체만으로 화난 게 아니라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전반에 화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문 대통령이 제대로 현실을 인식하고 있느냐에 대한 의심이다. 제대로 된 처방이 나올 수 없을 것이란 분노이기도 하다.

많은 이가 현 정부에서 경험한 건 이런 것이었다. 현 정부가 연달아 규제책을 내놓으면서 집값 하락을 기대했다. 하지만 집값은 계속 올랐다. 대출이라도 받아 집을 사려고 했지만 대출 규제를 강화하는 탓에 그럴 수도 없었다. 문 대통령은 “부동산 문제는 우리 정부에서 자신 있다고 장담한다”(2019년 11월)고 했지만, 결국 집값은 54.2%(서울 아파트 중위가격, KB주택가격동향) 올랐다. 자격 요건을 까다롭게 만든 탓에 청약 당첨은 기대할 수도 없었다. ‘전세나 살아야지’라고 생각했지만, 임대차 3법 이후 전세 매물이 쏙 들어갔다. 게다가 66주째 전세 가격은 오르고 있다.

이런 마당에 대통령이 공공임대주택에 가서 “자기 집을 꼭 소유하지 않더라도 임대주택으로도 충분히 좋은 주택으로도 발전해 갈 수 있는…”이라고 말한다면, 그게 국민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까. 공공임대주택은 현재로서는 민간 주택시장을 보완하는 역할 정도만 하고 있다. 공공임대주택은 총주택 수 대비 8%에 불과하고, 소득 기준 등이 까다로워 많은 이에겐 기회조차 없다.

문 대통령의 발언은 국민은 밥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인데, 빵가게 가서 “빵이 충분히 맛있으니”라고 말하는 격 아닌가. 강 대변인의 서면 브리핑에는 ‘주거취약계층은 물론 중산층에 희망을 주려던 대통령의 본뜻’이라는 문장이 있다. 대통령에게 중요한 건 본뜻이나 진심, 선의 같은 게 아니라 정책의 결과다.

윤성민 정치팀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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