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2득점’ 만년 백업공격수 오지영의 인생역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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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백업 공격수에서 리베로로 변신한 오지영. 늦게 꽃피운 만큼 롱런이 꿈이다. [사진 KOVO]

백업 공격수에서 리베로로 변신한 오지영. 늦게 꽃피운 만큼 롱런이 꿈이다. [사진 KOVO]

“이게 뭐예요?”

통산 5000수비 고지 앞둔 리베로 #KGC 이적 후 수비수 변신 대성공 #국가대표에 리베로 연봉퀸까지

여자 프로배구 KGC인삼공사 리베로 오지영(32)은 6일 대전 IBK기업은행전이 끝난 뒤 구단 관계자한테 꽃다발을 받았다. 통산 5000수비(리시브+디그) 기념선물이었다. 이날 경기가 3세트(3-0 인삼공사 승리) 만에 끝나는 바람에 오지영의 기록은 4989개(리시브 성공 3139개, 디그 1850개)에서 멈췄다. 오지영은 꽃다발을 이날 처음 선발 출전한 막내 이선우에게 건넸다.

V리그 여자부에서 5000수비를 달성한 선수는 7명이다. 오래, 꾸준히, 잘해야 달성할 수 있는 기록이다. 오지영은 “5000수비는 내가 세울 수 있는 기록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다른 리베로보다 늦게 뛰기 시작했다. 40살이나 돼야 가능할 줄 알았다. 영광이고, ‘내가 열심히 했구나’라고도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럴 만도 했다. 2005~06시즌 도로공사에 입단한 오지영은 코트 안보다 ‘닭장’이라 불리는 웜업존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단신(1m70㎝) 레프트였던 그는 만년 백업이었다. 서브도 강하고 수비도 잘했지만, 공격이나 블로킹이 약했다. 2015~16시즌까지 248경기에 나섰지만, 공격 득점은 2점이다.

오지영의 역할은 주로 ‘서베로’(서브+리베로)였다. 물론 정식 포지션은 아니다. 주로 후위에 교체로 들어가 서브를 넣은 뒤, 리시브와 수비를 전담했다. 공수가 세 번 바뀌어 전위로 가는 순간 다시 코트를 나온다. 그래도 그는 최선을 다했다. 역대 최다인 5연속 서브 득점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다른 팀이었다면 수비 전문선수인 리베로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오지영은 그러지 못했다. 팀에 V리그 최고 리베로인 김해란(36)이 버티고 있었다. 김해란은 V리그 통산 수비 1위(1만4428개)다. 이런 사정 때문에 좌절감을 느꼈고, 팀을 떠나기도 했다.

2016년, 오지영에게 예상하지 못했던 문이 열렸다. 서남원 당시 KGC인삼공사 감독이 그를 원했다. 트레이드를 통해 지금 유니폼을 입었다. 1년의 공백이 있었지만, 오지영은 잘 버텼다. 리베로로 새 출발 한 그는 마침내 팀의 중심에 섰다. 이제는 국가대표팀에서도 부른다. 내년으로 연기된 도쿄 올림픽 출전도 유력하다. 그는 “올림픽은 TV로만 보던 건데…, 발탁이 확정된 건 아니니 잘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2019~20시즌 직후 오지영은 큰 선물을 받았다. 자유계약선수(FA)가 돼 원팀과 계약하면서 리베로 역대 최고 대우(연봉 2억5000만원+옵션 1000만원)를 받았다. 다른 팀이 더 좋은 조건을 제시했지만, 그는 팀에 남기로 했다. 오지영은 “인삼공사 선수들과 다시 한번 해보고 싶었다. (몇 년간 성적이 나빠) 우리를 낮게 평가하지만,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오지영은 팀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 리시브 성공률 2위, 디그는 3위다. 이영택 KGC인삼공사 감독은 “우리 윙 스파이커는 경험이 부족하고, 리시브가 불안한 편이다. 선수도 자주 바뀐다. 그런데 (오)지영이가 다른 선수를 도와주며 중심을 잘 잡아준다. 무척 고맙다”고 말했다.

배구 경기에서 리베로는 주장을 맡을 수 없다. 주장은 코트 안에서 유일하게 심판과 대화할 수 있는 선수인데, 리베로는 수시로 교체한다. 그런데도 인삼공사는 지난 시즌부터 오지영에게 주장(경기 때만 한송이가 대리)을 맡겼다. 그만큼 후배를 잘 이끌기 때문이다.

오지영은 “다른 리베로는 무릎이나 허리가 아픈 직업병이 있다. 그러나 나는 리베로를 한 지 오래되지 않아 괜찮다. 의사 선생님도 마흔까지는 괜찮을 거라고 하더라”라며 웃었다. 늦게 꽃을 피운 만큼 더 오래 피우고 싶다는 마음이 느껴졌다. 12일 현대건설전에서 꽃다발을 받는다면 아마도 그건 그가 챙길 거다. 자신이 쌓은 금자탑을 기념하는 꽃다발이니까.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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