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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뒤집은 성추행 여군 죽음···역대급 징계로 장성 등 14명 단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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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미국 텍사스 포트후드 육군 기지에서 올해 여군이 동료 부대원에게 구타당해 숨지는 등 성폭행과 살인 등이 잇따라 발생해 2명의 장성을 포함한 고위 장교 14명이 해임·정직 처분을 당했다.

텍사스 포트후드 육군부대 병사 25명 올해 숨져

8일(현지시간) CNN에 따르면 이는 미국 육군이 단행한 징계 조치로는 최대 규모 중 하나다. 올해 들어 이 기지에서 일하던 병사 25명이 살인·자살·사고 등으로 숨지자 독립적인 조사위원회가 조사에 나섰다.

텍사스 포트후드 육군기지 소속이던 바네사 기옌은 실종 2개월만인 지난 6월 주검으로 발견됐다. 그를 추모하는 벽화가 그려져 있고 주위에는 선물과 꽃이 가득 놓인 모습. [AP=연합뉴스]

텍사스 포트후드 육군기지 소속이던 바네사 기옌은 실종 2개월만인 지난 6월 주검으로 발견됐다. 그를 추모하는 벽화가 그려져 있고 주위에는 선물과 꽃이 가득 놓인 모습. [AP=연합뉴스]

특히 성추행 문제로 고민했지만 도움을 받지 못하고 끝내 숨진 바네사 기옌(20)의 사연이 주목받았다. 이 부대 소속 여군이었던 기옌은 실종된 지 약 2달 만인 지난 6월 말 시신으로 발견됐다.

사망 후에도 기옌 추모 물결이 이어졌다. 미국 전역에는 기옌의 군복 입은 모습을 그린 벽화들이 등장했다. 벽화 앞엔 꽃·과일·음료수·인형 등 선물이 가득 놓였다. 사회적관계망서비스(SNS)에는 '내가 바네사 기옌이다'라는 해시태그(#)가 등장했다. 7월 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바네사의 어머니 글로리아 기옌을 백악관으로 초대해 면담하며 위로하기도 했다.

CNN에 따르면 이번에 처분을 받은 인사 중에는 기옌이 살해됐을 당시 이 기지를 책임지던 스콧 애플랜드 소장, 제1기갑부대장인 제프리 브로드워터 소장 등도 포함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지난 6월 시신으로 발견된 여군 바네사 기옌의 어머니(왼쪽)를 백악관으로 초청해 기옌의 죽음을 위로하며 이야기를 듣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지난 6월 시신으로 발견된 여군 바네사 기옌의 어머니(왼쪽)를 백악관으로 초청해 기옌의 죽음을 위로하며 이야기를 듣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조사위원회는 지도부의 조직 관리 실패가 성폭력·성희롱 등을 묵살하는 분위기로 이어졌다고 봤다. 대응·예방 프로그램이 부실하게 운영되면서 피해자는 보복에 대한 두려움에 떨어야 했고 사건은 묻혔다는 것이다.

기옌의 가족에 따르면 동료 부대원이었던 애런 로빈슨이 기옌을 성추행했고 기옌은 이 때문에 고민했다고 한다. 그러나 기옌은 정식 고소는 주저하고 있었다. 부대 내에서 '찍혀' 도리어 피해가 커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고민만 안은 채 기옌은 로빈슨에게 망치로 구타당해 숨졌다.

지난 7월 바네사 기옌을 추모하는 집회가 미국 각지에서 열린 가운데 기옌의 모습이 들어간 셔츠를 입은 참가자가 기옌의 그림을 들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7월 바네사 기옌을 추모하는 집회가 미국 각지에서 열린 가운데 기옌의 모습이 들어간 셔츠를 입은 참가자가 기옌의 그림을 들고 있다. [AP=연합뉴스]

로빈슨은 자신을 향한 수사망이 좁혀지자 갖고 있던 총으로 목숨을 끊었다. 미국 전역에서 관심이 몰리는 큰 사건이 된 만큼 체포 대신 죽음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기옌의 사건이 알려지자 자신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는 증언이 쏟아졌다. 2009년~2013년 텍사스 포트후드 기지에서 복무했던 조지나 버틀러 역시 동료 병사에게 성적 학대를 당했다. 버틀러는 "나와 기옌의 유일한 차이점은 내가 운 좋게 살아 있다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기옌 가족들은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길 바란다"고 말해왔다.

제임스 매콘빌 육군 참모총장은 중징계 발표가 나온 8일 기옌의 어머니에게 "관리자들에게 책임을 묻겠다"면서 "우리는 문제를 바로잡을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 8월 기옌의 추도 예배가 그의 고향인 휴스턴에서 열린 가운데 지인들이 바네사라고 적힌 풍선 앞에서 서로를 끌어안고 위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8월 기옌의 추도 예배가 그의 고향인 휴스턴에서 열린 가운데 지인들이 바네사라고 적힌 풍선 앞에서 서로를 끌어안고 위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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