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에세이] 美·佛 '와인전쟁'

중앙일보

입력

최근 이라크 사태를 둘러싼 미국과 프랑스의 대립이 통상(通商) 문제로 비화하는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급기야 미국 의회에서 프랑스 와인에 대한 수입 금지 조치까지 논의하기에 이른 것이다. 표면적인 이유로는 제조 과정에서 소의 분말 혈액이 사용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내세웠다. 하지만 실제로는 프랑스의 완강한 반미 입장에 대해 미국인들의 섭섭함이 표출된 것이라고들 한다.

와인은 병에 넣기 전에 마지막으로 몇 단계의 정제과정을 거치게 된다. 난백(卵白.알의 흰자위를 가리키는 말) 또는 혈액 등 동물성 단백질을 사용해 맑게 하는 과정, 미생물 및 불순물을 여과하는 과정, 산화 방지를 위한 이산화유황의 첨가 과정 등이 그것이다.

정확한 진위는 알 수 없지만 이같은 과정에서 광우병이 발생한 이래 사용이 금지되고 있는 소의 분말 혈액이 사용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게 미국의 주장이다.

원칙적으로는 와인 제조 때 어떠한 첨가물도 넣을 수 없게 돼 있다.하지만 현대에 와서 와인이 세계적으로 유통되고 오래 보관해야 하다 보니 산화방지제를 사용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인정해 법률로도 허용하고 있다.

유럽연합(EU) 가입국의 경우 와인 1ℓ에 대해 유기아유산을 레드 와인 1백60mg, 화이트 와인 2백10mg까지 넣을 수 있도록 허용한다. 유기농법 와인(Biologic Wine)의 경우 레드 와인 80mg, 화이트 와인은 90mg까지다.

이같이 유황성분을 사용하면 와인의 섬세한 맛과 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기 때문에 고급 와인일수록 유황성분을 덜 사용하기 위해 포도를 유기 재배하는 등 노력을 기울인다.

얼마 전 CNN 뉴스에선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프랑스 영사관 앞에서 시민들이 프랑스 와인을 하수구에 쏟아붓는 광경을 보도했다.

첨가물에 대한 불신뿐 아니라 캘리포니아에서도 프랑스 와인 못지않은 수준의 와인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행동으로 보인다.

이런저런 상황으로 미뤄볼 때 한동안 프랑스 와인이 미국 시장에서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미국인들은 위기에 직면할수록 뭉치는 특유의 애국심을 보일 것이고, 프랑스 대신 미국을 지지하는 스페인.이탈리아.오스트레일리아 등에서 와인이 대체 수입될 것이기 때문에 수급을 맞추는 데도 별 문제가 없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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