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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 총동원, 현금 확보하라” 비상금 끌어모으는 5대 그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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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코로나19 터널의 끝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 가운데 국내 5대 그룹이 각종 수단을 동원해 현금을 늘리는 방향으로 급선회한 것으로 나타났다. 2일 중앙일보와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이 삼성·현대차·SK·LG·롯데 등 5대 그룹 내 34개 상장 계열사의 ‘재무활동 현금흐름’을 분석한 결과 지난 3분기 총 2조9000억원으로 플러스(유입)로 돌아섰다. 올 2분기까지만 해도 5대 그룹의 재무활동 현금흐름은 -7조8000억원으로 큰 폭의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3분기 재무활동 현금흐름 보니 #자산 팔고 회사채 발행, 실탄 쌓아 #2분기 -7.8조→2.9조 현금 늘려 #코로나 장기화에 최악 상황 대비 #미래성장동력 언제든 잡을 준비도

재무활동 현금흐름은 기업이 자본을 조달하고 갚는 과정에서 현금이 들고 나는 것을 뜻한다. 특정 기간 기업이 빌린 돈을 갚거나 주주에게 배당금을 지급하면 마이너스(-)가 되고, 돈이 부족해 자금을 빌리거나 자금 조달을 위해 유상증자를 하고 회사채를 발행하면 플러스(+)가 된다.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불확실성에 대비하는 한편, 전기차·배터리 등 신성장 분야에 투자하기 위한 실탄을 마련하려는 목적으로 풀이된다.

5대 그룹 재무활동 현금흐름 추이.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5대 그룹 재무활동 현금흐름 추이.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구체적으로 5대그룹 34개 주요 계열사가 영업으로 현금을 창출해 내는 ‘영업활동 현금흐름’은 3분기 15조7000억원으로 전 분기보다 33%,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4% 줄었다.  반면 미래 성장을 위해 자산을 사들이고 설비투자에 돈을 쓰는 ‘투자 활동 현금흐름’은 19조6000억원으로 2분기보다 75.1%,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8.9% 늘었다. 결국 기존 사업만으로 현금 창출이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미래 시장을 놓치지 않기 위해 차입이든 자산·지분 매각이든 사채 발행이든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로 현금을 마련하고 있는 셈이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3월 현대·기아자동차 등 전 계열사에 현금성 자산 확보 지침을 내렸다. 코로나19 위기로 인한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현대차는 이미 올 상반기 6000억원의 회사채를 포함해 내년 초까지 4000억원의 회사채를 추가로 발행해 자금을 확보할 예정이다.

주력인 유통업이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롯데그룹도 전방위적으로 자금을 모으는 중이다. 롯데지주는 지난 4월 2000억원에 이어 8~9월간 2800억원, 롯데케미칼도 7월 300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롯데는 최근 백화점·마트·아울렛 등을 롯데리츠에 매각해 약 7300억원 규모의 현금을 마련했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로 언택트(비대면) 사업이 뜨는데 롯데는 사실상 전부 ‘택트(오프라인 매장 사업)’다. 확보한 현금으로 이커머스, 물류센터 등에 투자하려는 갈증이 크다”고 말했다.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이 “모든 자원을 동원해 현금을 마련하라. 현금이 없으면 적당한 매물이 나와도 대응할 수 없다”고 강조한 상태다.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지난 10월 인텔의 낸드사업 부문을 인수한 SK하이닉스가 좋은 예다. SK이노베이션은 9월 40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했고, 자회사인 SK루브리컨츠 지분 일부 매각을 추진 중이다. SK그룹의 신성장동력으로 꼽히는 배터리 사업에 더욱 적극적으로 투자하기 위해서인데, SK이노베이션은 내년 초 자회사 SK아이이테크놀로지(IET) 기업공개(IPO)도 준비 중이다.

이런 움직임들은 지난달 미국 뉴욕타임스 콘퍼런스에서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공격적으로 자산을 매각했다”고 밝힌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의 판단과 비슷하다. 그는 반도체 설계회사인 암홀딩스(ARM) 등 자산 매각을 통해 현재 600억 달러(약 66조원) 규모의 현금을 손에 쥔 상태다. 홍성일 한경연 경제정책팀장은 “기업이 확보한 현금을 미래 경쟁력을 좌우할 설비투자, 연구개발에 쓸 수 있도록 각종 규제개선, 연구개발 세액공제 등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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