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바꾼 '살빼기 수술'

중앙일보

입력

도를 넘어선 성형수술 열풍이 또 죽음을 불렀다. 지방흡입 수술실에서다. 아름다움에 대한 욕심이 위험불감증을 낳아 사망사고가 가파르게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수술의 부작용과 위험성을 너무 낮게 보는 경향이 있다"고 걱정한다.

5일 오후 8시30분쯤 서울 강남구 Y성형외과. 복부 지방흡입수술을 받던 韓모(27.여)씨가 호흡곤란과 심장이상 증세를 일으켰다. 부근 종합병원으로 옮겨졌으나 韓씨는 숨지고 말았다.

오후 5시30분부터 수술에 들어간 韓씨는 당초 전신마취 상태에서 팔.복부.허벅지 등 세곳의 지방흡입수술을 받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오후 6시15분쯤 허벅지 뒤쪽 흡입 수술을 마친 뒤 복부 수술에 들어가기에 앞서 의료진이 지방흡입을 쉽게 해주는 '투메센트'용액을 상복부에 넣는 순간 갑자기 산소분압농도(혈액순환 측정 수치)가 떨어졌다고 경찰은 밝혔다.

수술을 맡았던 병원장 B씨(36.성형외과전문의)는 "심폐소생술 등 응급상황에서 할 수 있는 조치는 다 취했지만 효과가 없었다"고 말했다. 수술에 참여했던 의료진은 B씨와 마취전문의.간호사 등 3명이었다.

◇의사 실수인가 특이체질인가=지방의 국군통합병원에 병리기사로 근무해온 韓씨는 키 1m55㎝에 몸무게 58㎏의 체격이었다. 지난달 23, 24일 이 병원에서 지방흡입술 상담과 지방흡입 수술을 하는데 필요한 사전검사를 받았다. 이어 5~7일 사흘간 외박 허가를 받고 서울로 올라와 수술을 받다 변을 당했다.

경찰은 韓씨의 사인을 ▶마취 과정에서 실수▶환자 특이체질▶지나친 지방과다흡입의 부작용 등 여러 갈래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로선 정확한 규명이 어렵다고 보고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부검을 의뢰했다.

한편 이 병원은 전체 성형수술의 절반 이상을 지방흡입수술이 차지할 정도로 지방흡입술을 전문으로 하고 있는 병원이다. 병원측은 홈페이지를 통해 "1회 시술시 최고 6천~8천cc 흡입을 기준으로 하고 있으며 몸무게가 많은 사람들은 1만2천~1만6천cc까지도 가능하다"고 광고하고 있다.

지방흡입술 때 빚어지는 의료사고의 상당수가 한꺼번에 너무 많은 지방을 빼려다 생긴 부작용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찰은 "광주에 있던 韓씨가 알음알음으로 성형수술 분야에서 이 병원이 유명하다는 얘기를 듣고 상경해 수술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韓씨는 이번에 수술비용으로 9백만원을 신용카드로 결제한 것으로 밝혀졌다.

◇잇따르는 성형수술 사고=지난해 9월 서울 서초구 H의원에서 유방확대 수술을 받던 李모(30.여)씨가 수술을 받은 직후 의식을 잃어 응급실로 후송되던 중 숨졌다.

李씨는 한달 전 이 병원에서 코를 높이고 얼굴 주름을 펴는 수술도 받았다. 경찰 부검 결과 李씨의 사망원인은 수술합병증의 일종인 '폐색전증'으로 밝혀졌다.

같은 날 울산시 H성형외과에서 지방흡입술을 받은 金모(22.여)씨도 목숨을 잃었다. 입사 면접시험을 앞둔 金씨는 콤플렉스였던 허벅지 부분 살을 빼려고 수술을 받았지만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2001년 3월에는 뱃살을 빼려던 남성 회사원 柳모(34)씨가 지방흡입술을 받은 지 하루만에 숨졌다. 그해 10월엔 유방확대수술 부작용에 따른 재수술을 받던 여대생 崔모(22)씨가 숨졌다.

성형외과 전문의 조세흠(曺世欽.48)씨는 "지방흡입술의 경우 한번에 뽑을 수 있는 양은 대략 2천cc 정도"라며 "요즘 복부.허벅지.엉덩이 등의 지방을 동시에 흡입하는 경우도 있다는데 과다 흡입의 위험이 있어 좋지 않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