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 프리즘] 충치보다 더 속썩이는 잇몸질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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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치과 질환이라면 많은 이들이 충치를 손꼽는다. 어릴 때 치아 한두개는 썩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건강에 미치는 피해나 경제적 손실 등을 모두 감안하면 잇몸질환이 충치보다 훨씬 위중하고 심각하다.

잇몸질환은 충치보다 흔하다. 성인의 80%가 앓고 있어 기네스북에 가장 흔한 만성 질환으로까지 올라 있을 정도다. 치아에 미치는 영향도 잇몸 질환이 한수 위다.

충치가 주로 한두개 치아가 썩는데 비해 잇몸질환은 여러 개가 동시에 도미노식으로 흔들리며 빠진다. 치료도 잇몸질환이 어렵다.

대부분 충치가 보철 또는 신경치료를 통해 완치되는 반면 잇몸질환은 치료가 쉽지 않다. 잇몸질환으로 치아가 빠진 경우 임플란트(인공치아 이식술)란 방법이 있긴 하지만 수개월의 치료 기간과 수백만원의 치료비가 소요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잇몸질환은 충치와 달리 치아에 국한된 국소 질환이 아닌 전신 질환이란 점이다. 잇몸질환을 일으키는 세균이 체내에서 면역반응을 유발해 심장판막증이 잘 생긴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잇몸질환을 심하게 앓은 사람일수록 심장병에 걸릴 확률이 크다는 뜻이다.

최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선 잇몸질환이 임신중독증을 일으킬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임신중독증이란 임신부에게 갑자기 나타나는 치명적 질환으로 고혈압과 부종.단백뇨(소변으로 단백질이 빠져나오는 현상)를 주요 증상으로 한다.

임산부 8백85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잇몸질환이 있는 산모는 그렇지 않은 산모에 비해 임신중독증이 2배나 높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특히 출산 직전까지 심한 잇몸질환이 있었던 산모는 10%에서 임신중독증이 나타났다.

연구진은 잇몸질환으로 체내에 과도하게 생긴 염증 물질이나 세균이 임신중독증을 유발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아기를 가진 산모는 잇몸질환이 생기지 않도록, 또 이미 생긴 경우라면 악화되지 않도록 치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잇몸질환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방안이 치실을 사용하는 것이다. 치실은 칫솔질로 제거하지 못하는 치아 사이 음식찌꺼기를 가장 효과적으로 없앨 수 있다.

잇몸질환과 관련된 또 하나의 오해는 어릴 때 충치 없이 깨끗한 치아를 갖고 있으므로 나이 들어 잇몸질환에 걸리지 않으리란 믿음이다.

그러나 충치와 잇몸질환을 일으키는 세균은 서로 다르며 상대방의 증식을 억제하는 작용을 한다. 충치가 많다면 오히려 잇몸질환을 유발하는 세균은 적다는 뜻이다.

어릴 때 충치가 적은 사람일수록 오히려 잇몸질환에 대비해 칫솔질과 치실 사용을 열심히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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